[O2칼럼/최영일] 장나라<하늘과 바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0월 29일 12시 31분


코멘트
중국에서 잘나가는 장나라에 대한 아쉬움

장나라는 귀여운 외모로 사랑 받았지만 그 틀에 갇혀 있는 상황이다(스포츠동아 자료사진)
장나라는 귀여운 외모로 사랑 받았지만 그 틀에 갇혀 있는 상황이다(스포츠동아 자료사진)

올가을, 불현듯 돌아온(혹은 다시 나타난) 과거의 스타가 있다. 돌아왔든 다시 나타났든 그는 어디서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어디로 돌아 왔을까? 그 '과거의 스타'는 바로 장나라다.

장나라는 짧지 않은 기간 중국에서 활동하다가 최근 다시 국내 브라운관에 얼굴을 비치고 있다. 최근 방송된 SBS '강심장'에도 나와 근황을 알렸다. 오랜만에 등장하는 연예인은 자기를 홍보하기 위해 출연한다.

시청자들도 그(혹은 그녀)가 마케팅을 위해 나왔다는 것을 안다. 이제는 출연자들끼리 대놓고 홍보를 이야기한다. 가수라면 새 앨범과 노래를 알리거나 연기자라면 새 영화나 드라마가 선보이는 타이밍인 것이다. 대부분 제작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이야기하며 대중의 관심을 끌고자 한다.

드문 경우로 대중의 기억에서 사라질 것이 두려워 존재를 알리고자 애쓰는 연예인도 있다. 이번에 장나라가 토크쇼에 출연한 목표의식도 뚜렷했다. 개봉을 앞둔 출연작 '하늘과 바다'에 관심을 가져주고, 많이들 봐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방송 출연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왜일까?

‘하늘과 바다’ 개봉 맞춰 국내 복귀

장나라뿐 아니라 비슷한 입장의 연기자의 메시지라면 일반적으로 아래와 같다.

"오랜만에 국내 팬들과 영상으로나마 뵙기 때문에 떨리는 심정이고요. 정말 열심히 준비하고 연기했어요. 제 입으로 최고의 연기, 최고의 작품이라고는 못해도 많이들 와서 보고 좋은 평가 받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표현이야 개성마다 다를 수 있지만 취지야 이럴 것이다. 그런데 장나라의 토크쇼 발언 이후 누리꾼들이 후끈 달아오르며 시끄러워지는 논란의 추세는 만만치 않다. 아직 개봉도 안한 영화에 '구걸영화'라는 안티성 꼬리표가 달렸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장나라 본인의 이야기 속에 문제의 발단이 다 들어있다.

요약하면 이렇다. 처음에는 그냥 캐스팅된 줄 알고 참여하여 열심히 연기했다, 나중에 제작비 문제가 터져 알고 보니 부친이 거의 전액 투자하는 작품이었다, 아빠가 급하게 중국에 (나를) 보내 CF 열심히 찍고 개런티를 모두 영화에 투자했다, 그 사실을 알고는 잠이 안 오더라, 아빠하고는 한동안 말도 안했다, 어쨌든 이번 영화가 반드시 잘돼야만 한다, 금액이 꽤 크다, 이런 내용이다.

상업논리로 보자면 영화도 시장상품이기에 투자 대비 더 많은 수익을 거두었으면 하는 단순논리는 당연한 것이다. 장나라의 발언은 솔직했다. 그럼에도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는 것은 왜일까? 장나라의 말이 주연 여배우의 입장에서 터뜨리기엔 부적절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안에는 '가족'의 관계와 '돈'이 걸린 흥행의 문제가 얽혀 있다.

장나라가  새 영화 ‘하늘과 바다’를 통해 6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28일 개봉한 이 영화에서 장나라는 서번트증후군을 앓는 24살의 여인 ‘하늘’로 출연했다.
장나라가 새 영화 ‘하늘과 바다’를 통해 6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28일 개봉한 이 영화에서 장나라는 서번트증후군을 앓는 24살의 여인 ‘하늘’로 출연했다.

착하고 성실했던 톱스타, 그런데…

장나라는 2002년 한일월드컵 열기 속에 청순한 분위기로 데뷔했다. 20대 초반의 가수로, 또 연기자로 '거의' 톱스타가 되었다. 톱스타의 '톱'의 의미는 대중의 주목을 한 몸에 받는 것을 의미한다. 외모를 놓고 예쁘다, 안 예쁘다 논쟁도 많고, 노래를 하면 잘한다, 못 한다 논란도 많다. 톱스타에게 '안티'는 당연히 따라다니는 현상이다.

초기엔 장나라도 그랬다. 그녀는 청순하고 순수하고 명랑하게, 때론 엽기적으로 무대에 서고 드라마에 출연했다. 그녀는 요즘 아이돌 스타들에게 흔한 함정인 악성 스캔들에 빠지거나 방송사고를 친 일도 없다. 그녀의 이미지를 '맹하게' 보는 이들도 있지만 대체로 선한 이미지로 최근까지 '기부천사' 대열에 이름을 올리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렇듯 착한 이미지의 장나라에 대해 따라다니는 안티는 유독 독하고 많다. 그것은 그녀 '자신' 보다는 '배경'에 주원인이 있다.

장나라의 매니저는 그 아버지다. 주호성(본명 장연교) 씨는 한국영화계에서 오랫동안 연기해온 베테랑 연기자다. 영화 마니아에겐 낯익은 얼굴이지만 일반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 그가 딸의 연예계 입성과 함께 입지가 달라진다.

주호성 씨의 이후 행보는 '장나라의 아빠이자 공식 매니저'가 되었다. 그는 딸에게만 매달렸다. 장나라를 본격적으로 중국에 진출시키면서 '북경나라문화전파유한공사'의 동서장(대표)을 맡았다.

여기까지는 2대째 스타를 배출한 연예인 가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으로 특별하다고 볼 수 없다. 가요계의 태진아와 이루, 연기자인 김용건과 하정우 등 우리나라 대중문화의 역사가 쌓이면서 당연한 현상답게 다수 사례가 있다. 장나라의 경우 문제는 직계가족 매니지먼트의 효과가 생산적이거나, 혹은 긍정적이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를 영역별로 살펴보자.

첫째로 장나라는 가수다. 그것도 21살에 혜성처럼 나타나 인기몰이를 했다. 2004년 말 4집 활동 이후에는 중국어 앨범을 내며 호흡이 끊겼다가 2007년 5집 'SHE', 2008년 6집 'Dream of Asia'를 출시했지만 반응은 예전 같지 않았다. 그녀가 여전히 가수라는 증거는 중국에서 가끔 콘서트를 연다는 것과 2008 북경올림픽 주제가에 코러스로 참여해 불렀다는 점 정도이다.

둘째로 장나라는 연기자다. 드라마에서 그녀의 인기는 2002년이 최고였다고 할 수 있다. 조인성, 양동근 등과 출연한 '뉴논스톱', '명랑소녀성공기', '내 사랑 팥쥐'가 모두 이 해의 작품들이다. 그녀의 발랄한 이미지를 잘 살렸던 출연작들이기도 하다. 그 이후 한국에서 2 편, 중국에서 한 편의 작품이 있었지만 대중의 기억 속에 각인되지 못했다.

세 번째로 장나라를 주연급 여배우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이 대목이 아직 의문문인 까닭이 있다. 데뷔 초 애니메이션 성우 출연을 빼면 2003년 '오! 해피데이' 이후 이번에 개봉하는 '하늘과 바다'가 두 번째 출연이다. 그런데 올해 흥행대작 '해운대'와 '내 사랑 내 곁에'의 하지원을 밀어내고 금년도 대종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최근 장나라에 대한 안티들의 맹비난은 주로 여기에 기인한다.

2% 아쉬운 한류스타

가수, 드라마 연기자, 영화배우로서 '장나라'라는 재원이자 상품에 대한 그동안의 매니지먼트가 돋보이는가? 아이돌 가수, 여성연기자, 여배우로 가장 중요한 기간인 20대 나이 7년 동안 쌓아온 앨범 활동과 필모그래피는 적절했는가? 평가해본다면, 답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장나라는 보이지 않는 시간의 블랙홀에 소모당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렇다면 적어도 우리에게 그녀가 보이지 않는 기간 동안 그녀는 국내가 아닌 중국에서 한류스타로 열심히 일했을 것이다. 간혹 꺼져가는 한류를 지켜내고, 더 넓은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홍보대사로 타국에서 열심히 뛰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아버지이자 매니저가 북경'나라'문화전파유한공사 대표가 아니던가.

중국에서 33부작으로 제작되고 중화TV로 방영된 '댜오만 공주'는 장나라를 위한 드라마로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2005년부터 올해까지 이것만 눈에 띈다. 그 외에는 CF 활동이 대부분이다. 이것이 바로 국내에서 전지현을 비판하는 이유와 똑같은 경우에 해당한다.

'한류'는 일개 연예인의 몫이 아니다. 한류는 문화코드이자 '시스템'이다. 반짝스타의 모멘텀 효과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좋은 기회로 적극 활용할 일이지만 한 스타가 지속적으로 한류를 끌어갈 수 없다. 산업의 성공모델은 끊임없이 복제되고 모방되는 것이다. 때문에 '창의성'과 집단협업의 노력이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IMF 시절 박세리의 LPGA 첫 우승에 감격했다. 역시 아버지이자 매니저로 박세리를 세계에 우뚝 세운 부정(父情)에 감동했다. 그리고 세계적 스타가 된 후 슬럼프를 겪던 박세리가 아버지와 결별하고 독립하는 과정도 보았다. 이와 비슷한 프로골퍼 신지애의 인터뷰도 있었다. 헐리웃에서는 대배우인 존 보이트를 아버지로 두었으나 그를 철저히 등지고 스스로 이슈메이커로 '여신'의 자리에 오른 안젤리나 졸리가 있다.

직계가족의 매니지먼트는 시스템 없이 맹목적일 때 지속성의 한계로 인해 침체를 겪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의 성공전략과 이를 지원하는 체계가 중요하다.

인간에게 시간은 유한하다. 스타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곧 30대가 될 장나라는 이제 아이돌이 아닐 것이다. 한국에서나 중국에서나 10대, 20대의 맹렬한 아이돌이 새로 치고 올라온다. 30대 장나라는 앙증맞은 연기로 대중의 귀여움을 받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장나라와 함께 한 아버지 주호성씨 (제공 브로드코리아)
장나라와 함께 한 아버지 주호성씨 (제공 브로드코리아)

‘최강동안’ 이라는 이미지 극복해야

30대 연예인은 뼈를 깎는 노력과 실력으로 정면 대결해야 생존가능한 각축장에 선다. 특히 여성연예인에게 20대가 유리한 시기라면 30대는 위험한 시기다. 장나라가 '최강동안'으로 불리는 것은 더 이상 칭찬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갈림길에 놓인 장나라를 보면서 '하늘과 바다'에서 6세 지능을 가진 어른인 '하늘'을 연기하는 장나라의 모습이 극중의 감성만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장나라는 이제 스스로 그동안 갇혀온 이미지의 한계를 뚫고 정체성의 독립을 속히 준비해야 한다.

주호성 씨는 최근 산동성 국제소극장연극제에서 중국어로 '원숭이 피터의 행복한 고백'을 연기했다. 그 또한 '장나라의 아빠'가 아니라 후배 연예인에게 귀감이 될 중견연기자로 필모그래피를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영일 / 문화평론가 vincent2013@gmail.com
칼럼 더보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