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김현진 ] 스타일 in 셀렙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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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9일 12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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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 어깨와 카리스마… 마돈나 김혜수 그리고 윤은혜에 대하여
키 작은 남자를 위한 키높이 깔창의 애칭은 '자존심'이다. 그렇다면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여자의 자존심은?

바로 '뽕'이다. 뽕으로 통칭되는 보정용 패드는 여자의 몸에서 크게 두 가지 부위에 도움을 준다. 하나는 어깨요, 또 하나는 가슴이다.

이 중 어떤 부위에 쓰이느냐에 따라 그 메시지도 크게 달라진다. 아찔한 S라인을 연출하는 가슴의 '뽕'이 "자기, 나 어때?"라고 달콤하게 속삭인다면, 위풍당당한 어깨 '뽕'은 "나 함부로 건드리지 마"라고 선전포고를 한다고 해야 할까.

이처럼 달콤살벌한 양면성을 자랑하는 '뽕'은 2009년 가을, 달콤함을 청산하고 도발과 도전 쪽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기 시작했다. 여자들이 어깨에 힘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2009년 가을 겨울, 최고의 패션 트렌드로 꼽히는 이른바 '어깨 패션(패드 등 보완재를 넣어 어깨를 과장되게 표현하는 스타일)'은 빅토리아 베컴, 린제이 로한, 리한나, 케이트 모스, 기네스 팰트로 등 스타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A급 해외 스타들로부터 무한한 사랑을 받으며 대중들에게 빠르게 전파되기 시작했다.

패션 용어로는 '파워 숄더'라 불리는 어깨 트렌드의 첨병은 프랑스의 고급 패션 브랜드 '발맹(Balmain)'이다. 1945년 프랑스의 디자이너 피에르 발맹의 오트쿠튀르(고급 맞춤복) 하우스로 시작한 이 브랜드는 흥망성쇠를 겪은 뒤 최근 몇 해 동안 급속히 최고의 인기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발맹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크리스토프 테카트냉은 1980년대의 '파워 숄더룩'을 재현하되, 이를 단아한 단청 처마처럼 그 끝만 살짝 위로 올리거나 반대로 어깨에 견장을 단 듯 두툼한 패드를 넣기도 하면서 다양한 변주 능력을 선보였다.


어깨 패션과 카리스마

'어깨 패션'은 단어가 주는 어감 그대로 권위와 파워, 카리스마를 상징한다. 발맹이 올 가을, 겨울을 겨냥해 선보인 컬렉션의 뮤즈로 지천명을 갓 넘긴 58년 개띠 '언니' 마돈나를 선택한 것은 그래서 우연이 아닌 필연이다. 20~30년을 훌쩍 뛰어 넘어 다시 한 번 불어 닥친 1980년대 패션의 부활을, 1980년대 최고의 스타일 아이콘 마돈나가 이끈다는 역사적 의미 때문이다.

또 1980년대 '어깨 패션'의 등장 배경에는 여성의 권익 신장이라는 메시지가 담겨있기도 하다. 독일의 패션 전문가 제르다 북스바움은 저서 '20세기 패션 아이콘'에서 '1980년대 남녀평등과 여성의 직업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여성들은 어깨 패드와 넓은 소매를 이용해 어깨를 넓혔다. 또 오버사이즈의 옷을 입음으로써 그들의 몸을 부정했다'고 기술했다. 적을 만난 수사자가 갈기를 세우고, 공작새가 화려한 꼬리를 펼치는 것처럼 남성 위주의 사회에 대적하는 여성들이 어깨를 부풀리며 그 힘과 위세를 과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현대 여성학계에서 마돈나만큼 페미니즘을 온몸으로 상징하는 인물은 드물다. 마돈나가 하나의 '신드롬'으로 굳혀진 이후 미국의 하버드나 프린스턴 등 서구의 대학들은 그를 주제로 한 여성학과 사회학 강의를 앞 다퉈 개설했다. 마돈나가 여성학에 끼친 영향을 다룬 마돈나학(Madonnology)은 서구 학계에서는 익숙한 연구 주제다.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 씨는 "마돈나는 데뷔 초기인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여성에게 드리워진 터부와 금기 사항들을 하나 둘 깨뜨리는 페미니즘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발맹이 이끄는 '어깨 패션'과 이처럼 진한 궁합을 자랑하는 마돈나는 올 9월 베스트 앨범을 전 세계에 동시 발매하기에 앞서 앨범과 같은 제목의 싱글 '셀러브레이션'의 뮤직 비디오에서 발맹의 미니 드레스를 뽐냈다. 여기서 그의 '포스(force)'를 재확인해준 요소는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이 촘촘히 박혔다는 드레스의 화려한 디테일이 아니었다. 육감적인 춤사위 속에서 무게 중심을 잡아 준 두툼한 어깨 패드였다.

김혜수. 사진제공 예인문화
김혜수. 사진제공 예인문화

'한 성질' 하는 여성들의 필수 아이템

탄생에 얽힌 사회적 배경과 위압적인 이미지 때문인지 국내 여자 스타들에게로 고스란히 옮겨진 '어깨 패션'의 트렌드는 주로 막 돼먹은 성질머리를 자랑하는 '배드 걸(bad girl)' 캐릭터들에 애용되고 있다.

발맹의 '어깨 패션'으로 일찍이 화제의 중심에 선 두 여자 스타는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SBS '스타일'의 김혜수와 KBS2 '아가씨를 부탁해'의 윤은혜였다.

소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악독한 편집장을 연상시키는 '스타일'의 편집장 김혜수는 이 드라마에서 미사일처럼 장착된 어깨 패드가 인상적인 발맹의 시스루 블라우스를 입고 처음 등장했다. 녹색 매니큐어와 패디큐어, 잠자리 날개 모양의 선글라스와 어우러진 '어깨 패션'의 포스는 그의 까칠한 성격과 카리스마를 형상화하기에 충분했다. 김혜수는 이 드라마에서 발맹 스타일의 블랙 재킷도 입었고 청바지도 입었다. 그 모든 옷들이 여배우 김혜수와 마치 한 몸처럼 느껴진 것은 단지 박 기자라는 까칠한 캐릭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김혜수'라는 브랜드의 아이덴티티가 '도전적' '독립적' '이성적' '만만치 않음' '카리스마 속의 섹시함' 등과 같은 키워드와 어우러지며 '어깨 패션'의 상징적 의미와도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영화 '타짜'의 정 마담, '바람피우기 좋은 날'의 이슬, 드라마 '장희빈'의 희빈 장씨 역을 완벽히 소화해 내며 대중의 머리 속에 각인된 김혜수의 이미지는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 그 자체다. 김혜수 대 '어깨 패션', 카리스마 대 카리스마의 만남은 충돌이 아닌 시너지였던 것이다.

‘아가씨를 부탁해’ 윤은혜.  동아일보 자료사진
‘아가씨를 부탁해’ 윤은혜. 동아일보 자료사진

이제 윤은혜의 '어깨'를 얘기할 차례다. '아가씨를 부탁해'의 윤은혜 역시 까칠한 상속녀('꽃보다 남자'의 구준표 캐릭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던)를 연기하기 위해 '어깨 패션'을 선택했다. 생각해보면 윤은혜가 맡았던 과거 배역 가운데 패션 감각을 뽐낼 수 있는 작품은 많지 않았다. 체육복(예능 프로그램의 '소녀 장사') 개량 한복(드라마 '궁') 종업원 유니폼('커피프린스 1호점')으로 20대 여배우의 '에지'를 표현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윤은혜는 최근작 '아가씨를 부탁해'에서 그 동안의 한을 풀 듯 다양한 '신상'과 코디네이션을 선보였다. 마치 패션지 화보를 보는 듯한 이미지를 매회 연출하면서 '스토리는 없지만 스타일은 남는 드라마'라는 약인지 독인지 모를 평가를 끌어냈다.

그가 드라마에서 입은 '베스트 아이템' 역시 방영 초기 캐릭터의 까칠한 성격을 표현하기 위해 입은 검은색 발맹 재킷이다. 이 재킷은 노련한 스타일리스트들에 힘입어 체인 달린 샤넬 백, 금속 목걸이와 훌륭하게 어우러지면서 연예인 패션 '워너비'들의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스타일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윤은혜는 이 드라마에서 데뷔 후 처음으로 '드라마와 캐릭터가 겉돈다'는 악평에 시달렸다. 대본 또는 스토리 전개의 부실함, 완벽하지 못한 연출 등 외부적 요인에 의해 억울하게 불거진 평가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깨 패션'과 어깨 패션이 상징하는 과잉적 이미지의 의상에 윤은혜가 압도돼 버렸던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스타일링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대중이 아는 윤은혜의 선한 이미지와 '배드 걸' 느낌의 '어깨 패션'은 묘한 불협화음을 일으켰다. 드라마 속의 윤은혜는 못된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억지로 입은, '아가씨' 강혜나가 아닌 착한 배우 윤은혜로 보였다. 심지어 뾰족한 어깨를 자랑하며 '블링 블링' 반짝이는 액세서리로 치장한 못된 아가씨였을 때보다 신분을 뛰어넘는 어려운 사랑을 이루기 위해 집사와 도피여행을 떠난 길, 후줄근한 셔츠에 촌스러운 바지를 입은 시골 아낙네 같은 차림이 더 예쁘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고 말하는 팬들도 있었다.

결론적으로 윤은혜의 '어깨 패션'이 어색했던 것은 그가 가진 카리스마의 무게 탓이었을 것 같다. 패션 스타일리스트 박명선 실장은 윤은혜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로 '소녀'란 키워드를 꼽는다. "옷으로 치면 명품 브랜드의 발랄한 세컨드 라인, 그리고 활동적인 미국 캐주얼 브랜드 같은 이미지의 윤은혜가 옷 자체만으로도 무거운 존재감이 느껴지고 성숙한 느낌의 유럽풍 '어깨 패션'을 연출하려니 뭔가 어색한 느낌이 든 것이다." 소녀이자 여동생이었던 윤은혜가 갑자기 "날 만만하게 봤냐"며 어깨를 곧추 세우는 풍경 속에서 대중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2009 Mnet 20's Choice’에 참석한 이효리, 하지원 (스포츠동아 자료사진)
‘2009 Mnet 20's Choice’에 참석한 이효리, 하지원 (스포츠동아 자료사진)

김혜수나 윤은혜 패션만큼 화제가 되지는 않았지만 '국민요정' 이효리와 흥행 배우 하지원도 올 8월 말 열린 'Mnet 20's 초이스' 시상식에서 화려한 '어깨 패션'을 자랑했다. 하지원은 10월26일 열린 강혜정과 타블로의 결혼식에서도 패드가 달린 발맹의 블랙 재킷을 뽐냈다. 공교롭게도 'Mnet'이 주최한 이 시상식에서 이효리는 '미래에서 온 전사 같아 무섭다'는 이유로, 하지원은 '바지, 헤어스타일과의 미스 매칭으로 오버한 느낌'이라는 이유로 모두 '워스트 패션'으로 회자됐다.

그러나 이들의 독립적, 도전적인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어깨 패션'은 궁합도 안보고 결혼한다는 4살 차이 연인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진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버라이어티 쇼 프로그램에 출연해 해맑은 선홍빛 잇몸을 드러내며 망가져도, 또 억센 부산 사투리를 써가며 애 딸린 남자에게 연정을 쏟아 붓는 어촌 마을 아가씨(영화 '해운대')로 신분이 낮아져도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그들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CF에서 선전하는 소주만큼이나 '독한 여자'가 돼 버린 그들에게는 생에 대한 절박함과 집착적 근성까지 느껴진다.

윤은혜를 위한 변명 하나.

51세의 마돈나, 39세 김혜수, 그리고 30세인 이효리와 하지원의 내공과 카리스마를 젖살도 빠지지 않은 스물다섯 윤은혜에게 요구할 수 있을까. 제 아무리 연기력을 갖춘 여배우라도 이를 한 방에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너도 나도 즐겨 찾는 올 가을 '어깨 패션'은 그러니, '목 짧고 어깨 넓은 여자는 피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포스도 카리스마도 세월이 주는 내공도 없는 여자는 피하라'고 말할 일이다. 수십 년이 지나 올해 다시 찾아온 1980년대의 유행은 또 다시 돌고 돌아 미래의 한 지점에 안착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쯤 세월은 윤은혜에게 '어깨 패션'에도 눌리지 않고 당당하게 카리스마를 뽐낼 경륜을 선사할 것이다.

여배우의 나이듦에도 장점이 있다.

김현진 동아일보 주간동아팀 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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