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여든에 다큐 찍으며 ‘신천지’ 발견”

  • 입력 2009년 3월 14일 02시 58분


제1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영하는 다큐멘터리 ‘꼬마 사장님과 키다리 조수’를 만든 영화감독 조경자 씨. 염희진 기자
제1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영하는 다큐멘터리 ‘꼬마 사장님과 키다리 조수’를 만든 영화감독 조경자 씨. 염희진 기자
조경자 씨 서울국제여성영화제서 ‘꼬마…’ 상영

폐품 할머니 등 작품 곳곳에 추억과 아픔 담겨

“여든이 돼서야 다큐멘터리로 새로운 세상을 발견했어요.”

80세 할머니가 찍은 18분짜리 다큐멘터리 ‘꼬마 사장님과 키다리 조수’가 4월 9∼16일 서울 신촌아트레온에서 열리는 제1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천개의 나이 듦’ 코너에서 상영된다.

이 작품의 연출과 내레이션을 맡은 조경자 씨는 2005년 처음 6mm 디지털 카메라 촬영법을 배운 뒤 다큐멘터리를 찍기 시작했다. 이번이 세 번째 작품으로 폐품을 수집하는 다른 할머니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카메라에 담는 조 씨의 이야기를 담았다.

“귀갓길에 폐품 수집을 하는 할머니가 보였어요. 제 어깨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은 체구였어요. 그 작은 손으로 어찌나 열심히 폐품을 모으던지 개미가 소똥을 밀고 가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아름다웠어요. 꼭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92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조 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배움을 잇지 못했다. 슬하에 2남 2녀를 둔 조 씨는 3년 전 증손자도 얻었다. 30년간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아동복 봉제 일을 하다가 자식들의 만류로 일을 그만둔 뒤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 다큐멘터리 촬영법을 배웠다.

첫 작품인 ‘산부인과’(2005년)에서는 핵가족 사회에서 아이들은 놀이방으로, 노인들은 복지관으로 향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와 손자와의 추억을, ‘한옥 예찬’(2006년)에서는 어릴 적 북한에 있는 한옥 집에서 오빠와 함께 숨바꼭질하던 기억을 담았다.

현재 구상하는 작품의 제목은 ‘책동네 사람동네’. 소크라테스 괴테 등 시대를 앞서 살았던 이들에게서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책방을 외면하는 현대인에 대한 이야기를 담을 예정이다. 조 씨는 거의 매일 서점에 들러 책을 읽는다.

“다큐멘터리가 단순한 사실의 ‘짜깁기’는 아니에요. 그냥 지나치기 쉬운 일상의 작은 부분이 렌즈 속에 담기며 새로 태어나는 것, 그게 바로 다큐인 것 같아요. 지금의 저처럼 말이에요.”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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