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환 빚독촉 못이겨 자살? 글쎄요”

  • 입력 2008년 9월 10일 07시 38분


사채업자가 말하는 ‘연예인과 사채시장’

탤런트 안재환 씨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연예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서울 강남 성모병원에 마련된 빈소에는 평소 친분이 있던 연예인들의 조문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안 씨가 자신의 삶을 마감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 주변인들의 진술과 정황은 사업 실패와 사채대출로 인한 빚 독촉에 무게를 두고 있다. 실제로 안 씨는 최근 지인에게 “(사업이) 힘들어 다 포기하고 죽고 싶다”고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안 씨는 죽기 전 수십억 원의 빚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어둠의 돈’으로 불리는 사채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은 지극히 부정적이다. 매스컴에서는 연일 사채의 부작용에 대해 지적하고, 피해자들 역시 속출하고 있다. 박신양이 연기한 STV 드라마 ‘쩐의 전쟁’이 보여준 사채의 세계는 일반인들에게 ‘공포감’ 자체였다.

사채시장에 정통한 A 씨는 사채의 위험성에 대해 동의하며 사람들의 주의를 촉구했다. 그러나 안재환 씨의 사채업자 압박설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의문을 제기했다. A 씨의 입을 통해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채의 ‘오해와 진실’에 대해 들어 보았다.

A 씨는 대부업체에 10여년 이상 종사하고 있는 이 분야의 전문가다. 본인의 요청에 따라 신분을 익명으로 했으며 소속 회사도 밝히지 않는다.

- 사채에 대한 매스컴의 시각은 심각할 정도로 부정적이다. 이는 사실인가?

“어느 정도 과장이 있긴 하지만 사실이다.”

- 이른바 제2금융권으로 불리는 대부업과 사채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 대부업과 사채는 근본적으로 같다. 대부업체 간판을 달고 있다고 해서 사채보다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은 안이하다.”

- 탤런트 안재환 씨의 사망에 대해 사채 빚 독촉을 견디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나오고 있는데?

“이자에 이자가 붙었을 것이다. 원금을 갚지 못해 원금과 이자를 다시 빌리는 식으로 진행이 되면 결국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안 씨의 사망이 순전히 빚에 의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연예인들만 따로 자금을 융통하는 업체들이 있다고 들었다. 당연히 일반인들에 비해 큰 액수가 오가게 된다. 안 씨의 경우 40억 사채설이 있는데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

- 무슨 뜻인가?

“수입이 많은 스타 연예인들에게 40억원이라면 일반인들로 치면 통상 수 백 만원 정도의 빚이라고 보면 된다. 단순히 이 정도의 빚을 갚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점이 의문이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다른 문제가 더 있으리라 생각한다.”

- 스타 연예인이라 해도 40억원은 큰 돈 아닌가?

“물론 큰 돈이다. 그러나 갚지 못할 만큼 큰 돈은 아니라고 본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한 연예인이 대부업체에 빚을 진 뒤 갚지 못했고, 업체가 연예인에게 ‘불법적인’ 압력을 행사했다고 치자. 안 씨의 경우는 모르겠지만 많은 연예인의 경우 그들을 보호해주는 ‘배경’들이 있다. 그 힘은 압박을 가하는 쪽의 힘과 비슷한 부류일 것이다. 따라서 이런 경우 ‘힘’과 ‘힘’이 만나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보기 마련이다. 게다가 연예인은 유명인이 아닌가? 불법적으로 납치를 해 폭행이라도 가했다간 언론 등에서 연일 난리가 날 것이다. 그런 위험부담을 감수할 업체는 없을 것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법업체들의 횡포가 날이 갈수록 더해지고 있는데?

“사채를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들이다. 불법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법에 호소하면 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것도 사실이다. 요즘엔 자동차 구입을 통한 ‘차깡’ 같은 수법들이 횡행하고 있다. 돈을 빌리러 온 사람들끼리 맞보증을 시키는 수법도 있다. 청소년을 상대로 휴대폰 대출 등을 해주는 경우는 더욱 위험하다.”

- 사채를 쓸 수밖에 없는 채무자들이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면?

“대부업체가 합법적으로 등록된 업체인지 확인해야 한다. 각 지방자치단체 홈페이지에 가면 조회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스스로 돈을 갚을 능력이 있는지를 잘 따져봐야 한다. 무작정 빌리면, 무조건 깨진다. 자신이 없으면 절대 빌리지 말아야 한다.”

채권투신법이 강화돼 대부분 채권자들의 ‘압박’은 불법이다. 심야에 전화를 걸어 빚 독촉을 하는 것도 안 된다. 주변에 알려서도 안 된다. 남들이 볼 수 있도록 엽서를 통해 독촉내용을 전달하는 것도 불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체들의 강압수단이 날로 독해지고 있는 것은 빌려주는 쪽 역시 필사적이기 때문이다.

“경제가 어려우니 수요도 늘어날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시장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한 마디로 말해 빌리려는 사람은 많아도 갚을 능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대문시장, 가락시장에 가보면 실제로 피해를 본 업자들이 수두룩하다. 업자들 얘기를 들어보면 과거에는 돈을 떼어 먹고 도망가는 경우가 1년에 1∼2건 정도였는데 요즘은 한 달에 1∼2건이 발생한다고 한다. 빌리는 사람이나 빌려주는 사람이나 모두 어렵다.”

업자들도 당한다. 전문적으로 대부업자의 돈을 떼먹고 사라지는 사기꾼들도 있다. 주민등록등본을 받고 돈을 빌려주었는데, 나중에 가보니 공터인 경우도 있다. A 씨는 특히 10대, 20대의 무분별한 소비행태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한 마디로 대책 없이 돈을 쓰고, 빌린다. “어려서부터 가정에서 돈에 대한 관념을 정확히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새로운 명품을 사기 위해 갖고 있던 명품을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빌린다. 세상에서 명품 전당포가 존재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다. 돈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

A 씨와 인터뷰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오는데 한 중년 여성이 종이 한 장을 불쑥 내밀었다. 받아보니 ‘직장인 신용대출, 무담보·무보증’이란 내용이었다.

돈이 무서운 세상이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 영상취재 : 박영욱 동아닷컴 기자


▲ 영상취재 :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 영상취재 : 정주희 인턴기자


▲ 영상취재 : 서중석 동아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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