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공포, 그 문을 여시겠습니까

  • 입력 2007년 7월 26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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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공포영화는 ‘15세 관람 등급’이 대세다. 여름방학 공포영화의 최대 팬은 10대 중고교생이기 때문이다. 베트남의 전설을 소재로 한 영화 ‘므이’(26일 개봉)는 18세 관람 등급이 나오자 개봉을 늦추고 문제로 지적받은 장면을 자진 삭제했다. 이처럼 국내 팬들에게 큰 호응을 얻지 못하는 ‘핏빛 호러’는 최대한 자제하는 게 새로운 트렌드다.

다음 달 1일 나란히 개봉하는 두 영화 ‘기담(奇談)’과 ‘1408’은 각각 1940년대 경성의 한 병원과 뉴욕의 호텔방에서 펼쳐지는 공포를 담았다. 두 작품 모두 사지를 절단한다든지 핏물로 뒤범벅되는 자극적 장면은 거의 없다. 그 대신 일상의 공간에서 누군가가 점점 압박해 오는 심리적 공포와 사랑의 비극이 빚어내는 ‘슬픈 공포’를 내놓는다.

○일상적이면서도 낯선 공간의 두려움

“마치 돌무덤에 들어온 기분이다. 호텔방은 원래 섬뜩한 곳이지. 저 침대를 쓴 수많은 사람 중에 병자는 몇인가? 실성한 사람은? 그중 몇이나 죽었을까.”

스티븐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1408에서 공포소설 작가인 마이크 엔슬린(존 큐잭)은 뉴욕 돌핀호텔 1408호에 들어와 휴대용 녹음기에 대고 이렇게 중얼거린다. 이 호텔의 지배인 제럴드 올린(새뮤얼 잭슨)은 95년간 이 방에 묵은 투숙객 56명이 모두 1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죽어나갔다며 말리지만 주인공은 고집을 꺾지 않는다.

이 영화엔 죽는 사람도 피를 흘리는 사람도 없다. 그러나 악마에 싸인 호텔방에선 죽은 영혼들이 나타나 자신의 죽음을 재연하는가 하면 갑자기 라디오에서 시끄러운 음악이 나오고, 뜨거운 물이 터져 나오고, 에어컨 냉각기가 조절이 안돼 빙하기가 되는 등 폐쇄 공간에 갇힌 주인공을 극도의 불안상태로 몰아간다. 여름 휴가철에 흔히 만나게 될 호텔방이라 더욱 섬뜩하다.

기담에 등장하는 1940년대 경성은 우울하면서 아름답다. 아름다운 벚꽃이 흩날리고 전차가 오가는 거리는 한국인지 일본인지 모르는 낯선 공간이다. ‘안생병원(安生病院)’의 목조로 된 고색창연한 시체 냉동고에 들어 있는 꽃보다 고운 여학생 시체는 극도의 대비를 자아낸다. 영화는 안생병원이 연쇄 살인 사건에 휘말려 병원이 폐쇄되기 전 나흘간의 미스터리한 연쇄 살인 사건을 담았다. 피아노와 현악 앙상블이 어울리는 클래식 음악은 공포영화에 어울리지만 그로테스크한 괴기함을 더해 준다. 그러나 결말 부분에 과도한 반전과 감동을 주려한 시도는 오히려 욕심처럼 느껴진다.

○가장 큰 공포는 사랑을 잃는 것

귀신이 나타나고, 교통사고가 나는 것은 사실 무섭지 않다. 가장 큰 공포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게 아닐까. 두 영화의 주인공이 극도의 공포와 절망에 쓰러지는 것도 바로 그 지점이다.

영화 1408에서 엔슬린은 3년 전 소아암으로 딸아이가 죽은 이후로 아내도 버리고 떠돌이생활을 한다. 딸과 아내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주인공은 폐허가 된 호텔방에서 죽은 딸을 만난다. 반가움에 눈물을 흘리며 딸아이를 안는 순간 그 딸은 재가 돼 버린다.

기담에서 가장 무서운 공포는 “사랑해”라는 말이다. 엄마보다 새아빠를 더 사랑한 딸, 죽은 딸을 살아 있는 남자와 영혼결혼을 시키려는 원장, 어느 날 아내의 그림자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의사…. 극도의 사랑은 때로 섬뜩한 러브스토리로 결말이 날 수 있다. 그것도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에.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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