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투사부일체의 흥행방정식

  • 입력 2006년 2월 2일 03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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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사부일체’는 수없이 상대의 머리를 때리는 장면을 통해 관객의 대리만족을 유도한다. 사진 제공 시네마제니스
‘투사부일체’는 수없이 상대의 머리를 때리는 장면을 통해 관객의 대리만족을 유도한다. 사진 제공 시네마제니스
《평론가들에게 예외 없이 ‘쌈마이(3류란 뜻의 은어) 영화’ 혹은 ‘저질 영화’라는 최악의 평가를 받았던 ‘투사부일체’가 기염을 토하고 있다. 지난달 19일 개봉된 이 영화는 개봉 11일 만인 30일까지 전국 관객 402만 명을 끌어들이면서 이미 전편 ‘두사부일체’의 관객 수(350만 명)를 넘어섰다. 평단의 악평이 무색할 만큼 대중이 열광하는 데는 필시 까닭이 있는 법. 설 연휴이던 28일 부산의 한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투사부일체’를 다시 본 기자는 관객들을 붙잡고 ‘도대체 이 영화가 왜 재미있는지’를 물었다. 다음은 관객의 대답을 통해 ‘투사부일체’의 성공 원인을 종합 분석한 결과.》

#머리 때리기

“에이, ××놈아” “야이, ××야” 하는 욕설과 함께 상대의 머리를 사정없이 후려갈긴다. 영화 전체로는 족히 100회가 넘는 횟수다. 머리는 한 인격체의 가장 존귀한 부위. 그런 머리를 취미처럼 구타하는 것은, 뒤집어 보면 때리는 자와 맞는 자 사이에 상하관계가 분명하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장치다. 평소 학교나 직장, 심지어 가정에서도 억눌리고 살아온 경험이 많은 한국 관객으로서는 상대의 머리를 때리면서 마음껏 무시하고 조롱하는 모습에서 야릇한 대리만족을 느낀다. 손으로만 머리를 때리면 관객이 혹시나 지루해할까봐, 영화는 지휘봉으로도 때리고 출석부 모서리로도 때리는 다양한 ‘변주’를 시도한다. 따라서 머리를 때릴 때의 소리도 “착” “팍” “퍽” “쾅” “빠악” “펑” 등으로 다채롭다.

#눈높이 유머

영화 속 유머는 90%가 이미 평균적 관객이 익히 들어 알고 있는 것들. △‘데인저’(danger·위험)를 ‘당거’로 읽거나 △향수 ‘샤넬(Chanel) 넘버5’를 ‘채널 넘버5’로 읽거나 △‘여권’이란 뜻의 ‘패스포트(passport)’를 ‘양주’로 이해하거나 △‘비행기’를 ‘KAL’이라고 쓰는 유머는 국민의 3분의 2 이상이 알고 있음 직한 철지난 영어 유머들이다. 가야금 연주를 들으며 “아쟁소리 좋다”고 하거나, “껌은 뭐로 만들었게? 답은 ‘고양이 뇌’야. 껌은 고양이 뇌로 뇌로” 같은 농담도 신선한 축엔 못 낀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들 농담이 갖는 수준의 일관성. 영화는 기발하고 재기발랄한 상급(上級) 농담을 던져 관객이 ‘생각’하게 만들기보다는, 관객 대부분이 인지하는 중하급(中下級) 농담을 일관된 자세로 던지면서 관객이 ‘재확인’하도록 만든다. 평등심리가 강한 국내 관객의 성향상, 나만 웃거나 나만 안 웃는 ‘외로운’ 상황보다는 남과 함께 웃고 우는 ‘획일적’ 상황을 한층 안심하고 받아들이기 때문.

#권위의 추락

영화는 국회의원과 검사, 사학재단처럼 사회적으로 명망이 높은 대상들을 싸잡아 ‘악(惡)’으로 몰고 간다. 일반화의 오류가 있을 수 있는 위험한 대목이지만, 평소 치열한 경쟁 속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안고 살아온 한국 관객에겐 일단 권위의 추락이 주는 쾌감이 짜릿하다. 고교생이 된 조폭 두목 상중(김상중)이 교내 ‘일진회’에게 얻어맞고 돈을 빼앗기는 대목도 마찬가지. 프로가 아마추어에게 당한다는 사실은 ‘전복(顚覆)의 쾌감’을 준다.

#법보다 가까운 주먹

윤리과목 교생이 된 조폭 2인자 계두식(정준호)은 그 지적이고 잘생긴 외모와 달리 모든 문제를 주먹으로 해결한다. 상대가 ‘나쁜 놈’이라면 앞뒤를 재지 않고 일단 두들겨 패고 보는 것. 법을 이용해 지략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에 주먹을 뻗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관객은 되레 ‘권선징악’이 제대로 달성된 듯한 통쾌함을 느낀다. 불법적이고 원초적인 방법을 통해 정의가 실현될 때 더 속 시원해하는 관객의 모순적 심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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