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전망대]신연수/DTV 전송방식 논쟁 속사정

  • 입력 2003년 12월 28일 17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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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방송 전송방식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한국의 지상파 디지털방송은 1997년 방송 3사와 산학연 전문가들로 구성된 추진협의회가 전송방식을 미국식(ATSC)으로 건의하고 정부가 확정함에 따라 본격화되었다.

2001년 4개 지상파 방송이 수도권에서 디지털방송을 시작했고 내년 말에는 도청소재지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전자업체들은 지금까지 연구개발과 설비에 7조여원을 투자했다. 특허도 많이 땄다. 방송사들도 디지털 장비에 1300억여원을 들였다. 소비자들은 정부와 전문가들의 결정을 믿고 170만대의 디지털TV를 샀다.

순조로워 보이던 디지털방송 전환이 올해 들어 난관에 부닥쳤다.

MBC KBS 등 방송사 노조들이 “유럽식(DVB-T)이 미국식보다 기술적으로 우월하다”며 방식 변경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전송방식을 원점에서 재검토하자며 미국식 강행을 주장하는 정보통신부를 ‘재벌 편향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최근엔 방송사 사장들이 디지털방송 연기를 요청했고, 날마다 방송을 통해 유럽식의 장점과 미국식의 단점을 일방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방송사 노조들은 정부가 기존 디지털방송 추진을 강행할 경우 총파업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사태가 커지자 정통부는 대책반을 만들어 수습에 나섰지만 이제 상황은 지루한 기술논쟁과 비합리적 힘겨루기로 이어지고 있다.

양측의 주장을 종합해 보면 그동안 국내외에서 숱한 실험과 보고서가 나왔고 지금도 미국은 미국식이, 유럽은 유럽식이 우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내외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은 ‘둘 다 장단점이 있지만 어느 것도 뚜렷한 기술우위는 없다’이다. 결국 선택의 문제라는 얘기다.

한때 휴대전화 방식을 놓고 미국식(CDMA) 유럽식(GSM) 논쟁이 치열했다. 한국은 세계 최초로 CDMA를 상용화한 결과 지금은 앞선 기술과 제품력으로 GSM 휴대전화 시장까지 석권하고 있다.

앞으로 디지털기술은 융·복합을 통해 양방향TV, 홈네트워크, 멀티미디어 통신 등으로 발전할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세계 디지털 시장을 선점해 수출이 늘어나고 한국의 전자, 정보기술(IT), 디지털콘텐츠산업이 발전하는 것이 과연 ‘재벌만 배불리는’ 것일까.

이미 미국은 미국식으로, 유럽은 유럽식으로, 일본은 일본식으로, 중국은 중국식으로 각기 앞서 가기 위해 뛰고 있다. 만일 지금 유럽식으로 바꾸면 새로 비용과 시간을 들여 개발해야 한다.

일부에서는 방송사들이 뒤늦게 유럽식을 주장하며 디지털방송을 늦추는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고들 한다. 미국식 디지털방송을 하면 방송사는 제작비가 3∼4배로 높아진다. 이동수신에서는 전파 독점 특혜가 사라져 이동통신업체들과 경쟁해야 한다. 아날로그 방송기술자들은 디지털화와 함께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방송사가 기술변경을 요구하는 것은 사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 때문이다”는 말은 미국식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음해일 수도 있다. 만일 방송사에 어려움이 있다면 별도로 대책을 논의할 일이다.

그러나 비교적 합법 타당한 절차를 거쳐 결정된 국가의 전략적 기술선택이 일부 이해집단에 의해 표류하는 것은 매우 걱정스러운 사태다.

더구나 6년 전 기술방식을 결정할 때 방송사들은 모두 미국식을 지지하지 않았는가.

이젠 소모적 논쟁을 끝내야 한다.

신연수 경제부 차장 ysshin@donga.o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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