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Now]성숙의 다른 이름 '미사리'

  • 입력 2000년 12월 12일 18시 49분


주말 텔레비전에는 젊음만 있고 성숙이 없다.

이승환이나 김건모 정도만 되어도 원로 대접을 받는다. 프라임타임 대의 쇼 프로그램은 갓 스물을 넘긴 선남선녀들에게 장악된 지 오래다. 누구나 빛나는 청춘이 있기 마련이지만 시간은 흐르고 인간은 늙는다. 늙음이란 삶의 고통과 상처를 표나지 않게 숨겨 가는 과정일까? 우리네 아버지나 할아버지들의 포커페이스에는 분명 그런 엄숙함의 고독이 묻어 있었다. 자정 무렵에 방송되는 KBS2 ‘초대’ 같은 프로그램은 자꾸 그 시절 그 추억만 떠올리도록 강권한다. 구닥다리 표어가 등장하는가 하면 노가수의 데뷔 시절 실수담이 억지 웃음을 자아낸다. “첫눈 내리던 지난 겨울날 / 우린 어디론가 멀리 떠나가고 싶어서 / 흔들거리는 교외선에 몸을 싣고서 / 백마라는 작은 마을에 내렸지”(동물원의 ‘백마에서’)로 시작하는 노래는 아름답지만 그 추억을 함께 했던 사람과 풍광은 사라졌다. ‘왕년에’를 되뇌일수록 추해지는 것은 자기 자신일 뿐이다.

이제는 늙음이 아니라 성숙을 논해야 하지 않을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승진을 하고 집을 장만하는 와중에도 ‘나 지금 여기’를 되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편안한 노후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행복을 위해 노후의 불안을 잠시 잊을 수는 없을까?

미사리는 성숙이 살아 숨쉬는 공간이다.

말없이 흘러가는 한강처럼, 그곳에는 시간과 함께 변해 가는 우리네 이웃이 있다. 우리는 그곳에서 날개를 접고 빼어난 풍경을 벗삼아 과거의 한때로부터 지금까지 흘러온 저마다의 삶을 이야기한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이어도 좋고 설거지를 끝내고 함께 나선 이웃집 아낙이어도 좋다.

그 교감 속으로 감미로운 라이브음악이 섞여들면 금상첨화다. 10년도 전에 텔레비전에서 사라진 가수들이, 나처럼 이마에 주름을 잡고 반백의 머리를 쓸어넘기며 노래를 한다. 그때는 싸인 한 장 받기도 힘들었는데 이제는 메모지에 노래를 적어주면 나만을 위해 노래를 부른다. 노래와 노래 사이의 짧은 침묵을 메우기 위해, 그 가수 역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화려한 정상에서 미끄러졌던 가슴 아픈 이야기를 하면서도 담담한 표정. 성숙의 다른 이름이다.

그렇다고 미사리가 우리네 지친 삶의 영원한 안식처는 물론 아니다. 이곳에서의 여유는 작고 값싼 페스티발에 가깝다. 미사리의 낭만은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를 다시 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준다. 오늘 미사리에 갔던 내가 너에게 그러하듯, 카페 거리를 찾은 손님이 나이 마흔을 훌쩍 넘긴 가수들에게 그러하듯, 미사리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위로하고 북돋는다. 그래서 미사리는 수도 서울의 성숙함을 드러내는 징표인 것이다.

요즈음은 직장인이나 주부들 외에 20대의 청춘들도 종종 미사리를 찾는다고 한다. 무엇에 반해 이 아름다운 마을을 찾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두컴컴한 비디오방이나 답답한 지하카페보다는 탁 트인 미사리에서 사랑을 키우는 것이 훨씬 좋을 것이며, 미래의 성숙까지 배워간다면 뜻하지 않은 행운이리라. 꽃다운 청춘을 넘긴 우리는 다만 그 앞에서 세월과 함께 영근 미소를 지으면 된다. 쉽지만 아무 곳에서나 할 일은 아닌 듯하다.

김 탁 환(소설가·건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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