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KBS 드라마<천둥소리>,첫회부터 표절 파문

  • 입력 2000년 10월 19일 13시 07분


KBS 2TV의 특별드라마 <천둥소리>가 시작부터 표절 시비에 휘말렸다. 소설가 김탁환 교수(건양대)가 지난 18일 첫 방송한 <천둥소리>의 이야기 구도와 인물 설정이 자신의 장편 소설 <허균, 최후의 19일>(푸른숲 펴냄)을 그대로 표절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천둥소리>는 그동안 수요일과 목요일 밤 10시대에 드라마를 편성하지 않았던 KBS가 최재성, 오정해 등을 캐스팅하며 의욕적으로 준비한 사극.

김 교수는 "상상력으로 창작한 소설의 내용들이 아무런 사전 동의 없이 드라마에 그대로 등장하고 있다"며 "사료에 나오지 않는 꾸며낸 대목과 역사적 사실을 바꿔 묘사한 부분까지 드라마에 버젓이 등장하고 있다"면서 조목조목 문제의 부분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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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드라마 도입부에서 허균(최재성 분)과 함께 혁명을 시도하는 박치의(이동준 분)에 대한 부분. 박치의는 허균이 죽기 5년 전에 일어난 '칠서의 옥' 사건 이후 행방불명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인물. 그런 그가 혁명군을 이끌고 의금부를 공격하고 허균이 죽기 전 날 도성 안에 있었으며 혼자 탈출하는 내용은 소설 외의 다른 문헌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 완벽한 '창작'의 산물인데 드라마가 그것을 그대로 베꼈다는 것이다.

박치의의 혁명군이 움직이는 경로와 일시, 행보가 적힌 지도 역시 모두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 자신이 소설을 위해 창작한 부분인데 이 내용들이 그대로 드라마 첫 부분부터 등장하고 있다는 것. 심지어 박치의의 호인 '천강(天江)'을 소설에서 혁명군 대장의 분위기에 맡게 '파암(破岩)'으로 고친 부분까지 그대로 드라마가 사용했다는 주장이다.

극중에 허균을 배신하는 이재영(박진성 분)이란 인물 역시 소설을 모방했다는 지적이다. 허균과 동문수학한 죽마고우 이재영이 나중에 친구를 배신하는 내용은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역사기록이나 야사, 논문에도 등장하지 않는, 작가적 상상력의 산물. 김교수는 "지식인의 나약함을 드러내기 위해 창작한 이재영의 배신 장면을 마치 사실인 양 그대로 가져다 썼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김교수는 "소설에서 허균의 충직한 하인으로서 의금옥으로 혁명동지를 구하러 갔다가 죽는 돌한 역시, 사료에는 허균이 죽기 전 날 체포된 것으로 간단히 기록된 것을 자신이 소설 전개상 '역사적 사실'을 바꿔가며 고친 부분인데 이 역시 드라마에 그대로 등장했다"고 주장했다.

김교수는 "허균과 혁명의 동지, 혁명의 배신자를 통해 소설을 삼각구도로 구상했는데 드라마 50부의 기본 골격 자체가 그것을 따르고 있다"며 "드라마가 참조의 수준을 넘어 4년 동안의 자료 조사와 1년 간의 집필을 거쳐 발간한 나의 작품을 완전히 훔쳤다"고 격분했다.

<허균, 최후의 19일>을 펴낸 도서출판 푸른숲의 한 관계자는 "공영방송인 KBS가 작가와 사전에 한 마디의 동의도 없이 드라마의 결정적인 인물 설정과 이야기 구도를 소설에서 그대로 베낀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며 "KBS와 작가 측에 내용증명을 보내 진상해명은 물론 적절한 조치를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천둥소리>의 책임 프로듀서인 드라마제작국의 안영동 부장은 "그런 상황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우리는 손영목씨가 사료를 바탕으로 쓴 극본으로 알고 있었다"며 "정확한 전후 사정을 파악한 후 우리 입장을 정하겠다"는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실존 인물인 허균을 등장시키고 혁명 장면에 대한 과감한 묘사와 대대적인 홍보로 많은 관심을 모은 <천둥소리>는 초반부터 '표절'이라는 파문에 휘말려 앞으로의 행보가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재범 <동아닷컴 기자>oldfie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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