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맨 블루스>감독, 주연배우 내한 인터뷰

  • 입력 2000년 9월 20일 15시 38분


9월30일 개봉 예정인 <포스트맨 블루스>의 감독 사부와 주연배우 츠츠미 신이치가 9월19일 한국을 방문해 공식 기자회견을 가졌다.

'동경의 타란티노' 혹은 '제2의 기타노 다케시'로 불리는 사부 감독은 원래 배우 출신으로,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우나기>(98)에 출연해 처음 국내 관객들에게 얼굴을 알렸다.

감독 데뷔작은 인생의 갈피를 잃은 세 젊은이가 달리기에 매력을 느껴 '뛰고 또 뛴다'는 내용의 <탄환 러너>(96). 이 영화로 제18회 요코하마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을 수상했으며 97년 두 번째 연출작 <포스트맨 블루스>로 '질주영화'의 명맥을 잇는 '사부 월드'를 완성했다. <언럭키 몽키>(98) <먼데이>(2000) 역시 전작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형식으로 신선한 상상력과 코미디를 접목시킨 작품.

사부 감독과 함께 내한한 츠츠미 신이치는 그의 페르소나 같은 존재다. <로미오와 줄리엣> <한 여름 밤의 꿈> 등 정통 셰익스피어 연극무대에서 처음 연기활동을 시작했으며, <탄환 러너>부터 <먼데이>까지 사부 감독의 모든 영화에 출연해 그의 오른팔 역할을 튼실히 해내고 있다.

<포스트맨 블루스>는 선량한 우편배달부 사와키(츠츠미 신이치)와 그를 야쿠자의 일원으로 오해한 경찰의 접전을 그린 코미디 영화. 죽음을 앞둔 소녀와 사와키의 순정만화적인 사랑이 곁들여진 멜로드라마이기도 하다. <포스트맨 블루스> 홍보차 한국을 찾은 두 사람에게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한국에 대한 첫 인상은?

사부=한국에 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도착한 지 몇 시간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잘 모르겠다. 내가 본 건 공항과 기자 회견장으로 오는 길이 전부다.

츠츠미 신이치(이하 츠츠미)=우릴 안내해준 스태프가 마음에 들어 한국에 대한 인상이 아주 좋다. 그런데 여기 있는 기자들은 너무 진지해서 날 주눅들게 한다.

▶달리기나 질주 등 몸의 움직임을 모티프로 한 영화들을 주로 만들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사부=<탄환 러너>를 만들면서 질주 신에 많은 호감을 갖게 되었다. <탄환 러너>를 먼저 봤다면 <포스트맨 블루스>를 이해하기가 훨씬 편했을 텐데…. 내 영화에서 달리기는 이야기의 중심과 연결되고, 사건 자체를 풀어 가는 진행방식과도 맞물린다. 아마도 돈이 없어 영화의 주요 이미지를 '달리기'로 표현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웃음). <탄환 러너>를 만들 때 제작비가 3400만 엔밖에 되지 않았는데 촬영기간은 14개월이나 걸렸다. 자랑처럼 보이겠지만 <탄환 러너>는 곧 미국 14개 도시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그렇다면 <포스트맨 블루스>의 제작비는 얼마나 들었고, 촬영기간은 얼마나 걸렸나?

사부=5천만 엔의 제작비가 들었고, 촬영은 25일이 걸렸다.

▶실제로 당신은 야쿠자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 사실인가?

사부=학교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나중에 야쿠자로 성장했다. 아마도 그 친구가 나보다 먼저 유명해졌기 때문에 그런 소문이 돌게 된 것 같다.

▶<포스트맨 블루스>를 포함해 최근 한국에서 개봉된 일본영화들 중엔 경찰 세계를 조롱하는 영화가 꽤 많다. 이건 최근 일본영화의 경향인가?

사부=경향은 아니다. 어쩌다보니 그런 영화들이 한국에 많이 수입되었던 것 같다. 내 영화를 다른 영화와 비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른 영화와 비교하는 걸 왜 민감하게 받아들이나?

사부=내 영화는 나만의 고유한 특징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건이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른다든지, 현실을 비트는 유머가 담겨 있다든지. 그러니 경찰에 대한 조롱이 담겨있다는 한 가지 측면만 가지고 비교를 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 게 아닌가.

▶자전거 질주 장면이 많아 촬영하기가 무척 힘들었을 것 같다.

츠츠미=사부 감독 영화엔 워낙 질주 장면이 많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피곤하다. 하지만 현장에선 언제나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연기는 고민을 많이 해야 잘 되는 게 아니라 현장 분위기가 좋아야 잘 된다. 좋은 분위기에서 작업했기 때문에 몸은 피곤했어도 연기하기는 훨씬 편했다.

▶<포스트맨 블루스>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을 꼽는다면?

츠츠미=사요코(토오야마 쿄코)와 데이트하는 신. 함께 자전거를 타는 동안 실제로 데이트하는 기분이었다.

▶연극, 영화, 드라마를 오가며 활발히 활동중인데, 어떤 분야가 가장 매력적인가?

츠츠미=처음 연극 무대에서 연기를 시작했기 때문인지 무대에 섰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하지만 지금은 연극과 영화, 어느 쪽이 매력적이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두 장르 모두 좋아졌다.

▶영화 데뷔 이후 줄곧 사부 감독과 함께 작업하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사부 감독의 작품 세계에 대해 한 마디 한다면?

츠츠미=감독으로서 사부는 정말 무지한 사람이다(웃음). 근데 그게 또한 최대 장점이다. 일본 감독들은 영화학교를 다녔거나 조감독으로 오랫동안 일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사부는 알려져 있다시피 배우출신이고 디자인 학교를 다녔다. 이런 경력은 기존의 틀에 묶이지 않을 수 있다는 뜻도 된다. 이것이 사부 감독 영화에서 만들어지는 웃음의 원천이다. 그는 지식이 아니라 지혜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다. 난 그 점이 마음에 든다. 사람들은 사부 감독의 작품 세계에 '사부 월드'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는데, 그 영화들에 출연한 나로서는 '츠츠미 월드'라 부르고 싶다.

▶그렇다면 사부 감독은 배우로서 츠츠미 신이치를 어떻게 보나?

사부=츠츠미와 난 비슷한 연배이기 때문에 마음이 많이 통한다. 츠츠미는 비슷한 또래의 배우들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장점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튀어야겠다는 의지는 별로 없고, 비교적 자신의 연기에만 충실하다.

▶특별히 영향을 받은 감독이 있나?

사부=20세 때부터 30세까지 난 줄곧 배우로만 활동했으므로 내 나름대로 영화에 대한 공부를 해야 했다. 특정한 감독에 열광하지 않고 다방면으로 알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한 감독을 꼬집어 말하긴 힘들다.

▶배우로서 자신의 장단점을 평가한다면?

츠츠미=장점은 감독 말을 잘 듣는 것이고(웃음), 단점은 뭐든 조금씩 부족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매일매일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지금 난 너무 행복하다.

▶감독 말을 잘 듣다 보면 개성을 살리기가 어렵지 않나?

츠츠미=감독 말을 잘 듣는다는 건 감독이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를 잘 알아차린다는 의미이다. 10명의 배우가 감독의 요구대로 똑같이 연기를 한다고 해도 관객들 눈에는 모두 다르게 보일 것이다. 연기자들은 이미 각자의 개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감독의 말을 잘 듣는다는 게 내 개성을 묵살시킬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무능한 감독과 일할 땐 내 생각대로 연기하지만, 유능한 감독과 일할 땐 말을 잘 듣는 편이다.

▶'포스트맨 블루스'는 이 영화의 성격을 잘 표현해주는 제목인 것 같다. 어떻게 정해진 제목인가?

사부=시나리오가 완성되기도 전에 이미 제목부터 정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냥 불현듯 이 제목이 머리에 떠올랐다.

▶당신은 황당무계한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인 것 같다. 비결이 있나?

사부=천재라서 그렇다(웃음). 인터뷰할 때마다 많이 듣는 질문인데, 그때마다 이렇게 대답했다. 어쨌든 난 일반적인 사건들을 비트는 데 재미를 느낀다. 기장회견을 하는 도중에도 어떤 코미디로 좌중을 웃길까 생각하고 있다.

▶한국영화를 본 적이 있나?

사부=<8월의 크리스마스><쉬리> 등 여러 편의 한국영화를 봤는데, 모두 인상적이었다.

▶두 사람의 차기 계획을 알고 싶다.

사부=현재 다음 영화의 시나리오 작업중이다. 내용은 구체적으로 밝힐 단계가 아니다. 그냥 재미있는 작품이 나올 거라고 확신한다. 2번 신까지 썼고, 이것만으로도 칸영화제에 나갈 수 있을 만한 수준이 아닌가 싶다(웃음).

츠츠미=사부 감독이 요즘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바로 그 영화에 출연할 것이다. 일이 없어서 사부 감독 영화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다(웃음).

황희연 <동아닷컴 기자> benot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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