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 출구조사 문제점]직접조사 '겉핥기' 돈낭비

  • 입력 2000년 4월 14일 19시 08분


평균 31.4%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KBS MBC SBS 등 TV3사의 총선보도에서 투표자 출구조사를 통한 당선자예측이 실제와 엄청난 차이가 난 것은 여론조사의 기본원칙이 무시됐기 때문으로 지적되고 있다.

KBS와 SBS의 공동조사(미디어리서치 등 4개 기관)와 MBC의 조사(한국갤럽) 결과 발표 당시 20개 지역구에서 1, 2위가 엇갈렸으며 두 조사 모두 원내 1당도 맞히지 못했다. 또 당초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의석수 차이가 훨씬 클 것으로 예상했던 KBS와 SBS는 결과적으로 21곳에서, MBC는 23개 지역구에서 잘못 조사한 셈이 됐다.

투표자 출구조사는 투표한 유권자를 대상으로 투표소 근처에서 ‘누구를 찍었느냐’를 물어 보는 방식이기 때문에 적중률이 높아야 한다. 그러나 오차의 한계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빚었다.

방송사 및 이들과 계약한 여론조사기관들은 조사 과정에서 대상을 ‘체계적으로 배제하는’ 우를 범했다. 80여 경합지역구에서 실시된 투표자조사의 조사대상은 7명 당 1명이었다. 이는 정확하게 7번째 투표자마다 조사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이 기본전제가 무시됐다는 것이다. 조사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투표를 마치고 나온 50대 여성의 경우 대부분 투표자조사를 기피해 성별 연령별 표본을 고르게 뽑아 내는데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이 때문에 젊은 유권자들에게 물어본 결과가 많이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또 하나는 ‘투표자조사’였지만 실제로는 사전 전화조사 결과를 토대로 ‘분석’한 것들도 많았다는 점이다. 사전 전화조사 결과와 당일 투표자조사결과가 큰 차이를 보이는 곳들이 나타나자 방송사측은 보도 직전까지도 당황해 했다. 결국 두 조사결과를 바삐 ‘퓨전’함으로써 혼선이 가중됐다는 것이다.

선거 직전 투표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큰 변수가 터져 나왔는데도 이것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120여 지역구에 대한 전화여론조사는 투표 17∼3일 전에 이미 끝나 있었다.

방송사와 여론조사기관 측은 이에 대해 “40여개 지역구에서 1,2위가 표본오차(KBS ±4%, MBC ±4.4%) 내의 승부를 벌였기 때문에 정확한 예측이 어려웠다”면서 “자신의 출신지역과 다른 후보를 지지한다고 말하는 등 성실치 못한 응답에서 비롯된 ‘비표본오차’도 큰 변수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고려대 허명회(許明會·통계학)교수는 “출구조사 시 50대 여성 유권자의 대답을 이끌어내지 못한 것은 젊은 여성들을 조사요원으로 투입한 것이 적잖은 요인으로 작용한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공영방송 KBS는 시청료를 오히려 시청자를 혼란에 빠뜨리는 데 사용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KBS는 이번 조사에 20여억원을 들였다.

한편 방송위원회는 17일 방송 3사로부터 의견진술을 들은 뒤 중징계인 ‘시청자에 대한 사과’ 명령을 내릴 방침이다.

<이승헌기자>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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