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기 vs 박중훈, 영화서「뒤바뀐 배역」관객은 즐겁다

  • 입력 1999년 5월 30일 18시 09분


“중훈이는 독특한 외모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개성이 장점입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코미디 장르에 매몰됐어요.”(안성기)

“성기형요. 무서울 정도로 영화와 가정밖에 모르는 선배죠. 하지만 이제 단추를 풀고 새로운 뭔가를 보여줬으면 해요. 착하고 성실한, 판에 박은 이미지 말고.”(박중훈)

영화배우 안성기와 박중훈.

이름 석자만으로 팬들을 극장으로 유혹할 수 있는 한국 영화계의 두 간판스타가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통해 연기대결을 펼친다.

이들의 ‘입씨름’ 수위는 예상외로 높다. 배우가 다른 연기자의 장단점을 공개적으로 언급하기가 쉽지 않은 충무로의 분위기에 비춰보면 뜻밖이다.

88년 ‘칠수와 만수’ 93년 ‘투캅스1’에 이어 세번째로 한 작품에서 공연하는 이들은 고정관념을 깨는 새 카드로 승부수를 던졌다.

‘인정사정…’은 냉혹한 살인자와 우직한 경찰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그린 액션물. 살인자는 아무래도 뒷골목 인생을 주로 연기해온 박중훈의 몫일 것 같다. 형사는 선량한 이미지의 안성기에 가깝고.

그러나 실제는 그 반대다.

78년 ‘병사와 아가씨’들로 성인 연기자로 데뷔한 이래 안성기는 처음으로 살인자 역을 맡았다. 반면 ‘투캅스’‘마누라 죽이기’ 등에서 남을 웃기는데 둘째가라면 서러워했던 박중훈은 죽을 때까지 범인을 추적하는 집념의 형사 역으로 관객의 허를 찌른다.

이명세감독은 “사실 두사람은 흥행에 쫓기는 한국영화의 강박관념 탓에 특정역할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던 희생자”라며 “관객들에게 역전된 캐스팅의 매력과 두 스타의 또다른 재능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사람만 자리를 비우면 “여기서는 나를 클로즈업 해야 되는게 아니냐”는 ‘압력’을 받았다고 이감독이 귀뜸할 만큼 두사람의 스크린 대결은 치열하다.

박중훈은 본격적인 촬영에 앞서 지난해 인천 서부경찰서에서 일주일간 숙식하며 형사수업을 받았다. 푹 눌러쓴 벙거지에 무뚝뚝한 표정이 바로 ‘모델 형사’의 모습이다. “판단은 판사가 하고 변명은 변호사가 해주고 형사는 무조건 잡는 거다”는 대사도 그가 현장에서 건져내 대본에 올랐다는 후문이다.

안성기는 킬러 이미지에 맞춰 ‘레옹형’으로 머리를 짧게 깎았다. “아역부터 따지면 연기경력 41년인데 처음 맡는 킬러 역이어서 긴장까지 됩니다. 이달초 태백 촬영에서는 치고 받는 액션장면을 찍다 나는 손목 인대가 늘어나고 중훈이는 눈덩이가 시퍼렇게 부었어요. 열심히 찍다 생긴 사고죠.” 7월17일 개봉.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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