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기계공업고등학교 학생들이 강사로부터 박판 성형 시뮬레이션에 대해 배우고 있다. 오토폼엔지니어링코리아 제공
조영빈 오토폼엔지니어링코리아 대표(59)는 매달 한 번 경북기계공업고등학교를 찾는다. 작년 8월 시작한 ‘오토폼 이음 프로젝트’의 현장을 점검하기 위해서다. 박판 성형 시뮬레이션 분야 세계 1위 소프트웨어 기업 오토폼엔지니어링(스위스 본사)이 한국에서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인공지능(AI) 기반 성형 해석 기술을 고등학생에게 가르쳐 기존 대졸자가 맡던 엔지니어링 직무를 수행하도록 키워내는 산학협력 모델이다. 박판은 자동차와 항공기, 가전제품 등 많은 곳에 쓰인다. 2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사무실에서 조 대표를 만났다.
이음 프로젝트의 배경에는 뿌리산업의 구조적 위기가 있다. 국가뿌리산업진흥센터(KPIC)의 2024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금형 산업 종사자 평균 연령은 47세이며, 30대 미만 비율은 3.9%에 불과하다. 최근 2년간 폐업한 제조업체 수는 8만1804개에 달한다(국세통계포털). 숙련공의 은퇴가 가속화되면서 수십 년간 현장에서 축적된 경험이 데이터화되지 못한 채 사라지는 ‘기술 증발’이 뿌리산업을 위협하고 있다.
조 대표는 이 위기의 돌파구를 AI로 인한 기술 보편화에서 찾았다. 그는 “원래 박사급 전유물이던 해석 기술이 대학 교육과정으로 내려왔고, AI가 더해지면서 학습 문턱이 다시 한 단계 낮아졌다. 직관적으로 물어보고 바로 실행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고 했다. 2023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클로디아 골딘의 연구처럼, 기술 발전에 교육이 따라가지 못하면 기술 격차에 따른 양극화가 심화된다는 문제의식도 이 프로젝트의 근저에 깔려 있다.
프로젝트 구조는 실전 중심이다. 오토폼 전문 인력이 주 1회 학교를 방문해 강의하고, 학생들은 현장 실습·기업 탐방·진로 멘토링·졸업 프로젝트를 병행하는 1년 6개월 과정을 밟는다. 교사들도 함께 교육받아 장기적으로 학교 자체 역량을 내재화하는 구조다. 조 대표는 “학생들은 자신들의 미래 모습이 사무실에서 설계를 하는 것으로 바뀔 것이라는 기대감에 적극적이었고, 배움이 늘어감에 따라 자신감도 올라갔다”고 했다.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교육 3개월 만에 강사들이 ‘현장 투입 가능’ 판정을 내렸고, 1기 10명 전원이 아직 9개월의 과정이 남은 상태에서 취업이 확정됐다. 이들은 2027년 상반기 자동차 1·2차 협력업체 현장에 합류할 예정이다. 현재 2기 모집도 시작됐다. 조 대표는 “대졸자들은 서울로 향하지만, 고등학생들은 지역 정착을 선호한다”며 이 모델이 지역 뿌리산업의 인력 공백과 기술 세대교체를 동시에 해결하는 구조라고 했다. 일본 오토폼 대표도 이 프로그램을 보고 “일본에서도 검토하겠다”고 했을 정도다. 오토폼이 진출한 세계 15개국 어디에서도 유례가 없는 시도다.
오토폼은 경북의 성공 모델을 올해 안에 전국으로 확산해 각 도에 거점을 구축하고 총 8개 산학협력 네트워크를 형성한다는 계획이다. 조 대표는 “숙련자의 경험을 기업의 디지털 자산으로 전환하는 것이 K제조 재도약의 골든타임을 사수하는 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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