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향한 약속… 기업들 ‘기술안보 시대’ 생존 사활

  • 동아일보

피지컬 AI로 생산성-기술력 높여
원천기술 확보 초격차 유지 노려
방산-우주-바이오 등 대규모 투자
이익창출 넘어 산업지도 다시 그려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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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산업 패러다임이 격변하고 있다. 단순히 제품을 잘 만드는 시대를 넘어, 인공지능(AI)과 로봇이 물리적으로 결합하는 ‘피지컬 AI’와 탄소중립을 선도하는 ‘에너지 주권’이 국가와 기업의 생존을 결정짓는 시대로 진입했다. 이른바 ‘기술 안보의 시대’가 도래한 지금, 기업들은 미래 생존을 위한 기술 및 제품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주요 기업들은 올해를 기점으로 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를 단행하는 등 사업 구조의 근본적인 재편에 나섰다.

특히 기업들은 소프트웨어에 머물던 AI를 제조 현장과 일상에 투입하는 데 너나 할 것 없이 뛰어들고 있다. AI의 힘으로 생산성과 기술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또한 지정학적 리스크를 정면 돌파하기 위해 공급망 내재화와 글로벌 시장 거점 확보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연구개발(R&D) 투자와 현대차그룹의 새만금 혁신 거점 구축, LG의 초거대 AI ‘엑사원’ 생태계 확장 등이 대표적이다. 대체 불가능한 핵심 원천기술을 확보해 ‘초격차’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란 분석이다.

전쟁과 공급망 위기라는 불확실성 속에서도 기업들은 방산과 우주, 바이오, 친환경 에너지 등 미래 먹거리 분야에서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미래 세대를 위한 일자리 창출이라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동시에, 고부가가치 산업을 더 키우겠다는 목표에서다.

삼성전자는 업계 최고 수준의 R&D 역량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기술 혁신 및 철저한 미래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R&D에 35조 원, 시설투자에 53조 6,000억 원을 투입했다. 매 분기 R&D 투자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삼성은 연구 조직을 3단계(사업부-연구소-SAIT)로 체계화해 1년 뒤의 상품화 기술부터 미래 성장 엔진까지 준비하고 있다. 전 세계 27만여 건의 특허를 바탕으로 지식재산권 경쟁력을 더 공고히 한다는 전략이다. 또한, 레인보우로보틱스 인수를 통해 지능형 휴머노이드 개발을 가속하며 로봇 시장의 주도권을 노리고 있다. 지난해에는 옥스퍼드 시멘틱 테크놀로지스를 인수했다. 2017년 옥스퍼드 대학교 교수들이 공동 창업한 스타트업으로 데이터를 사람의 지식 기억 및 회상 방식과 유사하게 저장하고 처리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지식 그래프’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SK그룹은 AI 기술을 선봉에 내세워 미래 성장의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추진 중인 미국 AI 투자법인 ‘AI 컴퍼니’ 설립에 SK㈜와 SK이노베이션 등이 6억 3,000만 달러 규모로 공동 출자에 나선 것이 대표적이다. SK그룹은 2028년까지 반도체와 AI 분야에만 약 128조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2030년까지 국내에 125조 2000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그 핵심 거점은 전북 새만금 지역이다. 이곳에 9조 원을 투입해 AI 데이터센터, 로봇 제조 클러스터, 수전해 플랜트를 구축한다. 특히 보스턴 다이내믹스와 협력한 전동식 휴머노이드 ‘아틀라스’를 2028년부터 제조 현장에 투입할 계획이다. 모빌리티를 넘어 에너지와 로보틱스를 결합한 ‘AI 수소 시티’ 모델을 통해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미래 기술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구상이다.

LG그룹은 AI를 미래 성장 동력인 ‘ABC(AI, 바이오, 클린테크)’의 핵심축으로 세웠다. 자체 개발한 초거대 AI ‘엑사원(EXAONE) 4.0’은 세계 시장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모델로 자리 잡았다. 누적 다운로드 1000만 회를 돌파하며 생태계를 확장하고 있다. 단순 언어 모델을 넘어 암 진단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의료 AI와 신물질 발굴 특화 모델 등 산업 난제를 해결하는 전문가 AI를 통해 고객 경험의 혁신을 꾀하고 있다.

롯데그룹은 생성형 AI와 로봇을 결합한 피지컬 AI를 유통 현장에 이식하고 있다. 롯데이노베이트의 휴머노이드 로봇이 근무하는 미래형 편의점이 대표적이다. 동시에 바이오 CDMO(위탁개발생산)와 청정 암모니아 도입 등 미래 에너지 및 헬스케어 기반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롯데케미칼을 중심으로 한 석유화학 산업의 과감한 구조 개편을 통해 고부가가치 스페셜티 소재 비중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한화그룹은 ‘원천기술 확보’ 경영 방침에 따라 우주와 방산, 해양 분야에서 글로벌 영토를 넓히고 있다. 누리호 기술을 바탕으로 민간 주도 우주 시대를 열고 있으며, K9 자주포와 천무 등 K-방산의 유럽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특히 미국 필리조선소 인수를 축으로 한·미 해양 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등 동맹국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기술력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국내 주요 그룹들의 이 같은 행보는 단순히 기업의 이익을 넘어 대한민국 산업 지도를 다시 그려가는 과정이다. 기술 확보야말로 기업 생존을 넘어 국가 발전의 초석인 만큼, 기술력 확보를 거듭 강조하고 있다. 한 기업 관계자는 “건실한 기업들도 기술 확보를 제때 못하면, 기업 경쟁력은 곧바로 무너질 수 있는 시대라는 점에서 기술 확보는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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