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설비가 인력과 체인블록을 이용해 건물 내부 계단을 통해 반입되고 있다. 대전도비 제공
첨단 반도체 및 배터리 공장과 국가 핵심 연구시설이 급증하면서 고가 장비의 안전한 이동과 정밀한 설치가 산업 경쟁력의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수십억 원대 연구 장비 하나의 손상이 곧 프로젝트 전체의 지연으로 이어지는 만큼 정밀 중량물 운반은 더 이상 단순 물류가 아닌 핵심 기술 영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원전·연구소·의료기관 등 고난도 현장에서는 일반 운반업체는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며 이 틈새시장에서 장기간 신뢰를 구축한 전문기업이 주목받고 있다.
장비 투자가 만든 차별화된 경쟁력
대전에 위치한 대전도비㈜는 반도체·원전·연구소 등 현장에서 중량 초정밀 설비의 운반과 설치를 전문으로 하는 강소기업이다. 500㎏부터 50t에 이르는 장비를 안전하게 이동시키고 밀리미터 단위로 정확히 안착시키는 작업은 단순해 보이지만 현장 동선 파악부터 장애물 회피, 완벽한 수평 구현까지 고도의 현장 판단력과 전문성을 요구한다.
이 회사가 30년 넘게 업계 신뢰를 쌓아온 비결은 고가 장비에 대한 과감하고 지속적인 투자다. 업계 대부분이 초기 비용 부담을 이유로 장비 임대를 선호하는 것과 달리 대전도비는 일찌감치 가업 승계와 장기 운영을 염두에 두고 핵심 장비를 직접 구매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전동 윈치·자동 이송 장비·특수 체인 등 수천만 원대 전용 장비를 자체 보유했다. 바닥 손상을 최소화하는 고가 플라스틱 깔판(개당 70만 원)부터 오염 기준에 따라 2∼3개월마다 폐기하는 소모성 체인까지 철저히 관리한다.
최상우 대표는 “임대 장비는 당장의 비용은 줄일 수 있지만 돌발 상황 대응력이 떨어지고 장기적으로는 신뢰 구축에 한계가 있다”며 “자체 장비 확보는 비용이 아닌 투자”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런 투자 철학은 LG화학 및 LG에너지 솔루션 기술연구원 등 주요 거래처에서 거의 독점에 가까운 신뢰를 확보하는 토대가 됐다. 현장 효율과 안전을 동시에 높이는 장비 운용 능력이 곧 경쟁 우위로 연결된 셈이다.
원전·연구소·의료기관 등 특수 시설은 일반 산업 현장과 차원이 다른 진입 장벽을 갖고 있다. 작업 투입 전 1시간 이상 의무 안전 교육을 이수해야 하며 지정 병원에서 신체검사까지 거쳐야 비로소 출입 자격이 주어진다. 작업 가능 시간 역시 엄격히 제한돼 있어 현장 경험 없이는 공정 난이도를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특히 국가 연구소 현장은 내부 연구 내용 자체가 고도로 전문화돼 있고 기밀 자료도 많아 외부인이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영역이다. 작업 업체 선정 과정부터 남다르다. 내부 박사급 연구 인력들의 논의와 추천을 거쳐 결정되며 한 번 신뢰를 잃으면 재진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기술력만큼이나 보안 준수와 현장 이해도가 중요한 이유다.
오염 관리 기준이 엄격한 현장에서는 작업 도구 하나까지 철저히 검증받아야 한다. 예컨대 반도체 공장이나 청정 연구실에서는 특정 재질의 공구 사용이 금지되고 작업복과 신발 착용 규정까지 따로 존재한다. 이런 세부 기준을 숙지하지 못하면 예상보다 비용과 시간이 크게 늘어나고 심한 경우 작업 중단까지 초래한다. 이런 환경일수록 오래 축적된 노하우와 판단력이 곧 경쟁력이 되며 신규 진입자가 쉽게 따라올 수 없는 진입 장벽으로 작용한다.
대전도비가 국방과학연구소·표준과학연구소·한국기계연구원·한국원자력연구원 등 국가 핵심 기관들과 20∼30년 장기 파트너십을 이어온 배경이다. 이들 기관에서 안정적으로 출입하며 정밀 장비를 담당하는 업체는 전국적으로도 극히 제한적이다.
확장보다 안정, 선택과 집중의 경영
크레인을 활용해 대형 설비를 건물 외벽 개구부로 인양 및 설치하는 작업 현장.대전도비는 베트남 삼성 반도체 현장에 약 한 달간 투입된 해외 프로젝트 경험도 보유하고 있다. 국내 보수의 2배를 받았고 글로벌 현장을 경험한 귀중한 기회였지만 최 대표는 해외 진출을 본격 목표로 삼지 않는다. “무리한 확장은 원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일관된 철학이다.
이는 단순한 보수주의가 아니라 현실에 기반한 전략적 판단이다. 해외 프로젝트는 높은 수익성을 약속하지만 장비 운송비와 현지 체류비 등 숨은 비용이 크고 국내 주력 현장에 공백이 생긴다. 실제로 말레이시아의 현장 제안은 이런 이유로 보류했으며 제주도처럼 물류 효율이 확보되는 지역 위주로 작업 범위를 조율하고 있다. 현재 인력과 장비로 감당 가능한 수준에서 완성도를 유지하는 것이 회사의 지속가능성을 높인다는 판단이다.
12명의 정직원 가운데 상당수가 20∼30년 장기근속자인 점도 이런 경영 방식의 결과다. 최 대표는 “급격한 인력 확충보다는 숙련된 팀원들과 안정적으로 기술을 전수하는 게 품질 유지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기술 전수와 품질 유지를 위해서는 안정적인 조직 운영이 우선이며 최 대표의 아들 역시 기술을 이어받아 타 지역에서 독립 운영 중이다. 가업 승계 구조까지 염두에 둔 장기 관점의 경영이 대전도비의 정체성이다.
최 대표는 “속도보다 안정, 규모보다 신뢰가 이 업종의 본질”이라며 “현장 완성도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선택과 집중만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만든다”고 말했다. 30년 무사고 기록이 이를 증명한다.
“30년 외길 현장기술…무사고로 신뢰 쌓아”
대전도비㈜ 최상우 대표 인터뷰
최상우 대표대전도비를 이끄는 최상우 대표의 커리어는 1980년대 사우디아라비아 건설 현장에서 시작했다. 중동 붐 시절 크레인과 지게차 운용 기술을 익히며 중장비 감각을 체득한 그는 귀국 후 대전으로 이주해 이삿짐센터에서 일하던 중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단순 가정 이사가 아닌 기계 운반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발견한 것이다.
“당시 대전에 크레인이 고작 두 대뿐이었습니다. 사우디에서 익힌 기술이면 충분히 승부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죠.”
최 대표는 대한통운 소속으로 기계 운반 전문 업무를 시작했고 거래처들이 그의 기술력과 성실함을 알아보면서 자연스럽게 독립의 길을 걷게 됐다. 과세특례 사업자로 출발해 일반사업자를 거쳐 2023년 법인을 설립하며 현재 대전도비·대전중량·대전도비용역 등 3개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최 대표가 강조하는 이 업종의 본질은 명확하다. “도비업은 일본어에서 유래한 용어로 국내에 공식 직종 분류조차 없습니다. 학문으로 배우거나 자격증으로 증명할 수 없는 영역이죠. 현장마다 구조와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표준화 자체가 불가능하고 결국 현장에서 쌓은 경험이 기술의 전부입니다.”
그는 관리 가능한 규모 내에서 품질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라 믿으며 안전사고 없이 신뢰를 지속하고 기술을 다음 세대로 온전히 전수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 30년 외길이 만든 신뢰가 곧 대전도비의 가장 큰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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