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3편의 시리즈에 걸쳐, 시리아 무력 충돌 이후 요르단에 정착한 난민 가정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의 실종이 남긴 공백과 회복의 과정을 조명하고, 이를 지원하는 한국 정부의 인도주의적 의미를 살펴본다.
전 세계 분쟁이 장기화하며 실종자 문제는 국제사회가 해결해야 할 핵심 인도주의 과제로 떠올랐다. 전쟁이나 강제 이동 과정에서 가족이 사라지고 생사를 확인하지 못하는 상황은 지역의 불안정을 키우고 난민·실향민 문제와 맞물려 구조적인 위기를 만든다. 얀 프리데 ICRC(국제적십자위원회) 암만 대표단 단장은 이를 “전쟁이 남기는 가장 극심한 고통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실종자 문제는 개인과 가족의 고통을 넘어서 지역의 안정과 직결된다. 실종이 장기화할수록 생계 기반이 붕괴하고 구호 체계 의존도가 높아지며, 이는 다시 국가 운영과 지역사회 부담으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실종자 수색·정보 기록·가족 재결합은 단순한 복지 행정이 아니라, 지역 긴장 완화와 갈등 확산 방지의 핵심 안정화 조치로 평가된다.
안소연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공동연구원은 실종자·난민 가족의 재결합과 기억의 복원을 “지역 안정의 출발점”으로 본다. 그는 “가족이 다시 연결돼야 난민이 일상을 회복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며 “그래야 난민 수용으로 인한 정치·경제·사회적 갈등도 완화된다”고 진단했다.
프리데 단장 역시 “실종자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지역 불안정의 확산을 막고 평화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과거의 아픔이 국제 지원의 동력으로… 한국정부와 ICRC의 협력 구조
한국이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실종자 가족 지원 사업에 참여하게 된 배경에는 이런 구조적 필요성과 더불어 한국만의 역사적 경험이 자리한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부터 지원을 통해 ICRC의 실종자 가족 지원 사업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지원은 3년에 걸쳐 진행 진행되며, 외교부 산하의 개발 협력 전담 기관인 코이카(KOICA, 한국국제협력단)가 ICRC와의 협의 및 사업 성과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2024년부터 중동 권역 분쟁 피해 이산 및 실족 가족 지원을 통한 평화 구축 사업을 본격화했다. 코이카는 사업이 현지에서 안정적으로 운영되도록 재정을 지원하고, ICRC와 공동으로 사업 성과를 관리한다. 암만=지희수 기자라갑채 코이카 분쟁취약지원팀 팀장은 “한국은 분단국가로서 이산가족 상봉 경험을 갖고 있다”며 “가족 재결합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기 때문에 이번 사업을 선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안 연구원 역시 “한국의 전쟁·분단·이산가족 경험은 중동 지역의 실향·난민 경험과 구조적으로 맞닿아 있다”며 “다른 국가에서 찾기 어려운 공감 기반을 한국이 제공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코이카와 ICRC는 이런 복합 구조에 대응하기 위해 이번 실종자 찾기 사업을 ‘인도-개발-평화 연계(HDP 넥서스)’를 적용했다. 라 팀장은 “분쟁 취약지역의 회복력 강화를 위해 HDP 넥서스를 적용했다”며 “단기 구호가 아니라 장기적 안정과 기능 회복을 목표로 정보 기록, 가족 재결합 지원, 심리·사회적 프로그램이 구성됐다”고 말했다.
또한 이 사업은 정서적 지원을 넘어 직업 교육, 생필품 구입 지원을 비롯한 경제적 지원을 포함한다. 현장의 필요를 지속해서 점검하고, 장기적으로 피난민 가족이 자립할 수 있는 사회 경제적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다.
ICRC는 이 협력을 “재정 지원을 넘어 상호 학습이 이뤄지는 파트너십”으로 보고 있다. 프리데 단장은 “양측이 경험을 공유하며 서비스 품질을 높여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비극을 이해하는 국가, 한국의 인도주의 역할 확장
안 연구원 역시 한국의 이번 참여를 “단순 지원을 넘는 외교적 확장”으로 분석했다. 그는 “한국은 중동에서 경제 발전의 롤모델로 인식돼 왔고, 한류 확산으로 대중적 호감도도 높아졌다”며 “실종자 가족 지원 프로그램 참여는 공공외교 차원에서 한국의 이미지 강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그동안 수원국 정부 대상의 재정 지원에 집중하던 것에서 발전해, 점차 현장의 개개인을 접촉하는 형태로 확장하고 있다는 평가다. 그는 “선진국으로서 다각화된 외교 전략이 요구되는 시점”이라며, “이런 접근은 한국이 ‘비극을 이해하고 손을 내미는 국가’라는 신뢰를 쌓는 데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중동 대중이 과거에는 중국·일본을 먼저 떠올렸지만, 지금은 한류 영향으로 한국을 더 친숙하게 느낀다”며 “이 흐름을 활용해 한국이 중동의 비극에도 공감하고 함께할 수 있는 파트너 국가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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