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현지 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각료회의를 주재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오른쪽 손등에 반창고가 붙어 있다. 2025.12.03. 워싱턴=AP/뉴시스
미국이 엔비디아의 고성능 인공지능(AI) 칩인 ‘H200’의 중국 수출을 허용하기로 했다. 강도 높은 대중(對中) 반도체 규제가 오히려 화웨이 등 중국 기업의 반도체 기술 자립을 앞당기고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8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소셜에 “미국이 강력한 국가 안보를 계속 유지하는 조건으로 엔비디아의 H200 제품의 대중 출하를 허용할 것이라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통보했다”며 “시 주석은 긍정적으로 반응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H200 매출의) 25%는 미국에 지불될 것”이라며 “이 정책은 미국의 일자리를 지원하고 미국의 제조업을 강화하며 미국 납세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엔비디아가 중국에 판매할 수 있었던 제품은 저성능 AI 칩인 H20에 한정돼 있었다. 이번 조치로 엔비디아는 H20보다 성능이 좋은 고성능 제품을 중국에 수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이번 결정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H200은 이들 기업에서 생산하는 고대역폭메모리(HBM)인 HBM3E를 사용해 생산한다.
美, 中기술자립 막으려 AI칩 빗장 풀어… 최첨단 블랙웰은 제외
H200 매출액 25%는 美가 가져가 美민주 “中 더 위험한 무기 만들 것”
이번에 중국 수출이 허용된 엔비디아의 H200은 지난 세대 아키텍처 ‘호퍼’를 적용한 칩 중 최고 성능을 갖춘 제품이다. 최신 ‘블랙웰’ 기반 GPU보다는 뒤처지지만, 현재 중국 수출이 승인된 저사양 칩 ‘H20’과 견주면 연산 성능 차이가 상당하다. 다만 엔비디아의 최첨단 AI 칩인 ‘블랙웰’과 곧 출시 예정인 ‘루빈’은 수출 허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 “中 기술 자립 막으려 수출 허가”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H200의 대중 수출을 허용한 것은 “AI 칩 수출 제한이 오히려 화웨이 등 중국 기업의 자체 개발을 가져온다”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논리를 수용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황 CEO는 그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여러 차례 회동하며 “엔비디아의 중국 판매를 늘려 중국 기업들이 미국산 AI 칩에 의존하게 해야 한다”고 설득해왔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0일 부산 김해국제공항 공군기지 나래마루에서 회담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2025.10.30. 부산=AP/뉴시스
실제로 중국은 미국의 강력한 대중 반도체 규제 정책이 시행된 이후 빠른 속도로 탈(脫)엔비디아 전략을 펼치고 있다. 수출용으로 성능을 대폭 낮춘 H20 칩을 사실상 외면하고 자체 AI 칩 공급망 조성에 나선 것이다. 화웨이가 자회사 하이실리콘을 통해 개발한 어센드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어센드는 미국 제재 이후 중국 빅테크 기업들이 엔비디아 칩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채택률이 빠르게 늘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H200 수출 재개는 중국 기업의 엔비디아 추격을 막고, AI 칩 자립을 지연시키기 위해 미국 정부가 택한 전략”이라고 말했다.
● HBM 납품하는 삼성-SK에는 호재
그러나 중국 빅테크 기업들이 H200을 손에 넣으면서 중국 AI 산업 발전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중국의 AI 기업이 엔비디아의 고성능 칩을 활용해 미국을 위협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이다. 실제 미국 정치권에서는 이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야당인 민주당 상원의원들은 성명을 내고 “이번 조치를 통해 중국은 군사 기술을 확보해 더욱 위험한 무기를 만들고 미국 기업에 대한 사이버 공격을 더욱 효과적으로 수행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수출 허가는 엔비디아에 HBM을 납품하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는 긍정적인 소식이다. 메리츠증권은 이날 “HBM3E 공급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SK하이닉스는 향후 장기적인 실적 증대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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