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임대도 공급난, 착공 건수 1년새 반토막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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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주택도 불황 찬바람]
건설 불황에 서민 주거안전망 흔들

고금리와 공사비 인상으로 건설사들의 부담이 커지면서 공공 임대주택마저 공급이 급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층이나 저소득층의 주거 안전망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18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세의 약 90%에 공급되는 ‘청년안심주택’ 인허가를 받은 현장은 지난해 9곳(3099실)에 불과했다. 2022년 23곳(6591실)의 절반도 안 되는 수치다. 2년 전인 2021년(44곳·1만6089실)과 비교하면 5분의 1 규모로 쪼그라들었다.

다른 공공 임대주택 사업도 전국에서 착공 중단, 사업 지연 등을 겪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지자체 등이 공급한 공공 임대주택 착공 건수는 7398채로 전년(1만5815채)보다 53.2% 줄었다. 정부의 ‘1·10 공급대책’에 포함된 기업형 임대 활성화 방안 역시 제대로 추진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보센터 소장은 “주택도시기금 등 재원을 활용해 임대주택 공급 인센티브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5년째 착공못한 청년주택, 주차장으로 써… “서민 주거안정 흔들”


파격 혜택에 관심 끌던 청년주택
금리-공사비 뛰자 사업포기 속출
LH 민간임대 4곳 우선협상 취소
업계 “공공성 있는 곳 지원 늘려야”
18일 찾은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의 한 청년안심주택 예정지. 서울시는 2019년 4월 이곳에 12층 높이 186실 규모로 임대주택을 지을 수 있도록 인허가를 내줬다. 5년이 가까워 오지만 현재 이 현장은 지상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 시 조례에 따르면 사업계획승인 고시일부터 2년 내 착공을 하지 않으면 해제 대상이 된다. 서울시는 “건설 경기가 좋지 않다는 공감대가 있어 착공이 늦어지더라도 직권으로 인허가를 취소하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 고금리 등으로 주택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청년, 서민을 위한 공공 주도의 임대주택 공급마저 차질을 빚고 있다. 시장 여건이 악화되면서 주택사업자들이 착공을 미루거나, 아예 수주 자체를 포기하는 일까지 빚어지고 있다. 전세사기 등의 영향으로 민간 전월세 시장이 위축돼 있는 상황에서 공공부문까지 제 역할을 못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과거엔 ‘특혜’ 지적받던 청년주택도 ‘기피’


2020년 8월 인허가를 받은 동작구 노량진동 청년주택 현장도 4년 가까이 멈춰 섰다. 직업전문학교 건물을 헐고 19층 높이, 395실 규모 청년안심주택을 짓겠다고 인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자치구에 착공 신고가 접수되지 않았다. 학교 건물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청년안심주택은 공공이 민간 토지의 용적률을 대폭 올려주는 대신 공공기여 명목으로 사업자가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임대주택을 공급하되, 향후 매각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이다. 파격적인 용적률 인센티브 때문에 사업 도입 당시 민간 사업자에 대한 특혜 시비까지 나왔다.

그랬던 청년안심주택이 ‘기피 사업’이 된 이유는 금리가 오르면서 수익성이 크게 악화됐기 때문이다. 초기 임대료가 시세 90% 수준이고 10년 동안 입주자가 2년마다 재계약할 때 인상 폭이 5% 이내로 제한된다. 이 때문에 실제 수익은 임대료가 아닌 준공 후 10년이 지나서 매각할 때 발생한다. 금리가 오르면 적자가 쌓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 청년주택 사업자는 “초기 대출 금리는 2%대 중반이었지만 현재 5%대 초반으로 뛰어올라 매년 20억 원 넘게 추가 부담이 발생하는 상황”이라며 “고금리 기조가 꺾이지 않으면서 사업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현장에서는 사업 시행자가 보유한 임대주택 물량을 시세가 아닌 감정평가액 그대로 팔겠다며 서울주택도시공사(SH) 문을 두드리고 있다. 자금난에 허덕이면서 단기 현금 흐름 확보를 위해 손해를 보고라도 물량을 넘기겠다는 것이다.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의 청년안심주택 사업 관계자는 “PF 연장이 어려워 토지주가 아니고는 사업을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과거에는 펀드나 자산운용사에서 사업과 관련해 문의가 잦았는데 이제는 연락이 끊긴 지 오래”라고 전했다. 서울시 측은 “임대주택 매입 대금 지급 시기를 준공 이후가 아닌 공정 도중으로 앞당기는 등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 전국 곳곳서 임대주택 사업 ‘포기’ 나와

임대주택 공급 감소세는 비단 서울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우선협상대상자까지 선정한 ‘공공지원 민간임대’ 현장도 잇달아 좌초 위기를 맞고 있다.

LH는 지난해 12월 △아산 배방A9·10블록(554채) △파주 와동(858채) △평택 고덕(1499채) △이천 중리(436채) 등 전국 4개 현장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정을 취소했다. 2020년과 2021년에 걸쳐 대상자를 선정한 곳들이다. 양자 간 견해차가 2∼3년째 좁혀지지 않자 사업을 원점으로 되돌린 것이다. 지난해 11월 말부터 사업자를 공모하고 있는 △김해 진례 △익산 소라 △남청주 현도 등에서는 아직 사업 신청서를 제출한 곳이 없다.

건설사들이 사업 참여를 꺼리는 이유로는 공사비 인상 영향이 가장 크다. 지난해 12월 기준 건설 공사비 지수는 153.26으로 3년 전 대비 25.8% 올랐다. 우선협상권을 반납한 한 건설사 관계자는 “공사비 인상 폭이 조율 가능한 정도를 넘어섰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서민 주거의 ‘완충지대’ 역할을 하는 임대주택 공급이 급감하면서 정부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시행사 임원은 “정부의 PF 대책은 단기간에 착공, 분양이 가능한 사업장에 맞춰져 있어 기업형 임대는 공공성이 있더라도 외면당하고 있다”며 “공공성 있는 사업장이 지원받을 수 있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
#공공임대주택#공급난#주거안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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