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인행사, 우리 매장서만 해라” CJ올리브영에 과징금 19억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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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납품업체에 강요’ 검찰 고발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은 판단 유보
업계 “공정위 고무줄 잣대” 지적
‘5800억 예상’ 과징금 피해 IPO 탄력

납품업체들에 자사 매장에서만 할인행사를 하라고 강요한 CJ올리브영에 약 19억 원의 과징금이 부과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올리브영이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면서 올리브영은 수천억 원대의 과징금을 피하게 됐다.

7일 공정위는 대규모유통업법을 어긴 올리브영에 시정명령과 과징금 18억9600만 원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법인은 검찰에 고발했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올리브영은 2019년부터 최근까지 ‘파워팩’, ‘올영픽’ 등의 할인행사를 열면서 행사 상품을 올리브영에서만 싸게 팔라고 납품업체들에 강요했다. 납품업체들은 올리브영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이런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랄라블라, 롭스 등 다른 헬스앤드뷰티(H&B) 사업자 행사에 참여할 기회를 잃었다.

올리브영이 납품업체로부터 부당하게 이익을 가로챈 사실도 적발됐다. 올리브영은 할인행사가 끝난 뒤 행사용으로 싸게 납품받았던 화장품을 정상 가격에 팔았다. 그러면서도 그 차액을 납품업체들에 돌려주지 않았다. 올리브영이 이런 방식으로 가져간 이익은 총 8억48만 원이었다. 납품업체에 판매 데이터를 사실상 강매하는 방식으로도 1700억 원을 걷었다. 납품업체 의사와 상관없이 제품이 많이 팔린 지역, 연령대 등 데이터를 제공하면서 순매입액 1∼3%를 ‘정보처리비’로 내게 한 것이다.

공정위는 이 같은 갑질이 대규모유통업법 위반이라고 봤다. 다만 조사 과정에서 제기된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했다. 조사를 맡은 공정위 기업거래결합심사국은 H&B 오프라인 시장의 절대강자인 올리브영이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해 공정거래법을 어겼다고 주장했다. 올리브영은 단독 입점을 조건으로 납품업체에 광고비 인하 등의 혜택을 줬는데, 이런 EB(Exclusive Brand) 정책이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라는 것이다.

하지만 심의위원들은 올리브영이 온라인에서 쿠팡, 네이버 등과도 경쟁하고 있는 만큼 시장지배적 사업자인지가 불확실하다고 봤다. 올리브영이 시장지배적 사업자라는 기업거래결합심사국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판단을 미룬 것이다. 그 결과 5800억 원에 달할 것이라고 관측됐던 과징금 규모도 약 19억 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에 해당되면 대규모유통업법을 위반했을 때보다도 제재 수위가 더욱 세지게 된다. 공정위는 올리브영의 시장영향력이 커지고 있고 EB 정책도 확대되고 있어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보고 무혐의가 아닌 심의절차 종료 결정을 내렸다.

업계에선 시장에 대한 공정위 판단에 따라 제재 수준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면서 공정위가 고무줄 잣대로 기업들을 재단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디지털 경제의 출현으로 시장 상황이 급변하는데, 공정위의 판단은 이런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업계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올리브영이 수천억 원대 과징금을 피하면서 기업공개(IPO)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올리브영은 지난해 8월 IPO 계획을 시장 상황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잠정 연기했다. 이번 판단을 통해 공정위 리스크를 일정 수준 덜어낸 만큼, CJ 측이 올리브영 상장을 다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재계에서는 올리브영의 상장이 성공하면 이재현 CJ그룹 회장 장남인 이선호 CJ제일제당 경영리더에 대한 승계 작업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올리브영 측은 이번 공정위 제재에 대해 “문제가 된 부분은 내부 시스템 개선을 이미 완료했거나 완료할 예정이며 향후 모든 진행 과정을 협력사들과 투명하게 공유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종=송혜미 기자 1am@donga.com
송진호 기자 jino@donga.com
#cj올리브영#할인행사#납품업체 강요#공정거래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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