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들플레이션… “묶음상품이 낱개보다 비싸다니”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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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개보다 묶음 상품이 더 비싸다니… ‘번들의 배신’
기저귀 육개장 즉석밥 등 일부 제품
개당 가격이 더 싼 ‘눈속임 가격’
제조사 “일시적 할인율 달라 발생”… 소비자들 “낱개 가격 따져야 할 판”

《고물가에 조금이라도 더 싸게 사려고 묶음 상품을 구입했는데 실제 계산해 보면 묶음 상품이 낱개 상품보다 더 비싼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개당 가격으로 환산했더니 6개짜리 묶음 상품이 낱개 상품에 비해 개당 1500원이나 비싼 경우까지 있다. 더 많이 사는 소비자일수록 더 비싼 가격에 물건을 사는 셈이다. ‘번들(묶음 상품)’일수록 가격이 비싼, 일명 ‘번들플레이션’으로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번들의 배신’이란 말이 나온다. 낱개 가격을 일일이 계산해 보지 않으면 손해 보는 구조라 온라인에도 단위 가격 표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



20대 자취생 A 씨는 ‘네이버쇼핑’에서 햇반(210g)을 사려다가 의아한 점을 발견했다. 좀 더 싸게 사려고 24개짜리 대용량 묶음 상품을 장바구니에 넣었다. 하지만 개당 가격을 계산해 보니 3개짜리 묶음 상품보다 오히려 비쌌다. 24개짜리 묶음의 개당 가격은 1017원, 3개짜리 묶음의 개당 가격은 993원이었다. 그는 “묶음 상품일수록 더 싼 게 상식적이지 않느냐”며 “이젠 소비자가 낱개 가격까지 따져봐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묶음 상품이 더 싸다’는 상식이 통하지 않고 있다. 고물가에 조금이라도 더 싸게 사려고 묶음 상품을 골랐지만 계산해 보면 묶음 상품이 낱개 상품보다 더 비싼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가격은 그대로 두고 용량을 줄인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 주요 성분을 줄인 ‘스킴프플레이션(skimpflation)’에 이어 묶음 상품을 더 비싸게 파는 이른바 ‘번들플레이션(bundleflation)’이 비판받고 있다.

19일 네이버쇼핑 ‘브랜드스토어’에서 CJ제일제당 ‘비비고 육개장 500g’ 상품을 검색해 보니 1개는 3980원인 반면 6개짜리 묶음 상품은 3만2880원에 판매됐다. 개당 가격으로 환산하면 6개짜리 묶음 상품은 개당 5480원꼴로 낱개 상품에 비해 1500원이나 비쌌다. 보통 더 싸게 사려고 묶음 상품을 구매하지만, 실제로는 많이 사는 소비자일수록 비싼 가격에 상품을 구입하는 셈이다. 브랜드스토어는 해당 제조사가 네이버를 통해 직접 파는 채널로, 개인업자가 입점해서 판매하는 게 아닌 제조기업들의 일종의 공식적인 몰이다.

눈속임 가격 책정 브랜드는 한두 개가 아니었다. 농심 ‘신라면 컵라면(65g·소컵)’의 경우 12개 묶음의 개당 환산 가격은 1017원인 반면 6개 묶음은 817원이었다. 더 많이 살수록 돈을 더 내는 구조다. 유한킴벌리의 하기스는 ‘네이처메이드 팬티형 기저귀 4단계 52매’ 상품을 2개 묶음은 4만8900원에, 4개 묶음은 10만5900원에 팔고 있었다. 오뚜기의 ‘오뚜기밥 고시히카리(210g)’ 상품도 3개 묶음은 4380원에, 18개 묶음은 2만9280원에 판매됐다. 개당 가격으로 환산해 보면 3개 묶음은 1460원꼴인 반면 18개 묶음은 1627원꼴로 더 비쌌다.

일각에서 기업들이 마진을 많이 남기려고 묶음 제품이 더 쌀 것이라는 소비자 기대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해 가격을 오히려 높게 책정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에 대해 제조기업은 “프로모션(판매 촉진 행사)을 다양하게 벌이다 보니 특정 시기에 낱개는 할인이 들어가고, 묶음 상품엔 할인이 적용되지 않았을 수 있다”며 “일부러 가격을 높인 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오프라인에 이어 온라인에서도 단위 가격 표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가격 책정이야 기업 자율이지만 번들플레이션은 소비자 기망 행위”라며 “소비자가 일목요연하게 가격을 비교할 수 있게 해서 단기 이익을 위해 번들 가격을 속이면 장기적으론 (기업이) 손해 본다는 점을 알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번들플레이션
번들(bundle·묶음)과 인플레이션(Inflation·물가 상승)의 합성어. 단위 가격으로 비교했을 때 묶음 상품이 낱개 상품보다 더 비싼 현상을 가리키는 신조어. 고물가에 조금이라도 더 싸게 사기 위해 묶음 상품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에게 혼란을 초래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번들플레이션#묶음 상품#낱개#눈속임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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