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HUG, 전세금 반환 3개월 기다리라니… ”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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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등 피해 세입자들 발동동
작년 신청부터 지급까지 평균 56일
보증보험 약관엔 “한달 안에 지급”
HUG측 “신청 몰려 어쩔수 없어”

경남 거제시에 사는 최모 씨(39)는 지난달 14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전세 보증금 반환을 신청했다가 당황했다. 보증보험 약관엔 ‘한 달 안에 전세금을 돌려준다’는 조항이 있지만 막상 신청하자 직원이 “6월까지 최소 3개월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당초 그는 집주인에게 재계약을 안 하겠다고 하고 이미 근처에 보증금 2000만 원에 월세 40만 원의 반(半)전세를 구해 살고 있었다. 하지만 계약 만료를 한 달도 안 남긴 시점에 집주인은 ‘목돈이 없어 전세금을 내줄 수 없다’고 버텼다. 결국 집주인에게 전세금을 못 받은 그는 기존 전셋집 전세대출 3억 원의 지연이자로 월 150만 원씩 물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여기에 이사 온 집의 월세와 관리비 등까지 합하면 총 220만 원을 내게 됐다. HUG에 항의했지만 직원은 “전세금 반환 신청이 너무 몰려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최근 역(逆)전세와 전세사기 등으로 전세금 반환 신청이 폭증하는 가운데 전세 보증보험에 가입한 세입자가 HUG에서 보증금을 돌려받기까지 2개월 가까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집주인에게 전세금을 떼이고 HUG에서도 전세금을 못 받는 세입자들이 장기간 대출 이자를 떠안거나 이사를 못 가는 등 추가 피해가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HUG가 5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홍기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 보증보험 가입자가 HUG에 전세금 반환을 신청한 뒤 전세금을 받기까지 평균 55.75일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보증금이 지급된 4851건만 집계한 결과로 전세금 반환 신청 후 담당자가 배정돼 정식 접수까지 길게는 한 달이 넘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전세금 지급 기간은 더 길 것으로 보인다.

“전세금 반환 늦어 이사 못한채 이자 걱정”


HUG 전세금 반환 지체



작년 46%가 5주 이상 지나 지급… 반환신청 접수에만 한달 더 걸려
보증금 미반환 사고 1년새 2배로… HUG 업무 폭증에 대응 역부족









경기 고양시의 빌라에 전세 사는 오모 씨(33)는 지난달 6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전세 보증금을 지급해 달라고 신청했지만 한 달 넘도록 아무런 연락을 못 받고 있다. 홀로 초등학교 4학년 딸과 2학년 아들을 키우는 그는 친정과 가까운 동네로 이사 가야 했다. 이사 갈 집까지 알아봐 둔 상태지만, 전세금 반환 접수조차 안 돼 HUG의 연락만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는 “아이들을 위해 학기 초반에 이사를 가야 하는데 이미 늦어 버렸다”며 “이사는 가야 하니 학원이나 돌봄교실도 못 보내고 있어 답답하기만 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 “정식 접수까지 한 달 넘게 걸려”

5일 HUG가 홍기원 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보증금 반환 신청 5078건의 46.1%인 2340건은 실제 지급까지 5주 이상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27건(4.5%)은 올해 3월 셋째 주까지도 보증금 반환이 안 됐다. ‘30일 안에 보증금을 돌려줘야 한다’는 약관이 있는데도 실상은 5주 이상 기다리는 세입자가 절반 이상인 셈이다. 이번에 HUG가 파악한 전세금 지급 기간은 신청이 접수되고 이행업무 담당자가 배정되어 공식적으로 접수되는 때부터 보증금 지급까지 걸린 일수다. 실제로는 이행청구 신청 이후에 공사가 접수를 완료해 담당자를 배정해 주는 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오 씨처럼 담당자가 배정되길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인천 부평구 빌라에 거주하는 정모 씨(30)는 올해 1월 27일 전세금 반환 신청 서류를 제출했지만 3월 7일에야 ‘접수 완료’ 통보를 받았다. 접수까지만 한 달 넘게 걸린 것. 그는 “신혼집 이사 계획을 잡지도 못하고 대출이자 걱정에 몇 달간 밤잠을 설쳤다”고 말했다.

● 전세사기 등으로 보증사고 급증

전세금 지급이 늦어지는 것은 전세사기가 잇달아 발생하고 최근 부동산 침체로 집값이 보증금보다 더 떨어지는 ‘역전세’ 등으로 보증금 미반환 사고가 급증하고 있는 영향이 크다. 지난해 전국에서 발생한 전세보증 사고는 총 5443건으로 2021년(2799건)의 2배가량으로 늘었다. 월별 사고 건수 역시 지난해 12월 820건에서 올해 1월 968건, 2월 1121건으로 매달 가파르게 늘고 있다. HUG의 보증이행 건수 역시 지난해 1월 239건에서 올해 1월 968건으로 4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지난해 보증이행 담당 인력은 전국에 40명 안팎에 그쳤고 최근에야 70명으로 늘었지만 급증한 전세금 반환 업무를 하기엔 역부족이다.

익명을 요구한 HUG 보증이행 담당자는 “빌라왕 전세사기 이슈와 역전세난 이후로 업무량이 평년보다 3배 이상 늘어났다”며 “팀원 모두 야근하며 주말마다 나와 일해도 역부족인데 상부에서는 실무 인원을 늘려주지 않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HUG 관계자는 “업무량이 폭증해 신속한 처리에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 정부 때 전세보증보험 가입 기준을 완화하고 보증보험을 대대적으로 홍보해 가입자가 크게 늘어났지만 그에 맞는 인력 충원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홍 의원은 “올해는 2021년 임대사업자의 전세보증보험 가입 의무화 이후 체결된 계약이 종료되기 시작하는 해인 만큼 지난해보다도 전세금 반환 신청 건수가 많아질 것”이라며 “신속한 반환과 양질의 상담을 위해 담당 인력을 보강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진호 기자 jino@donga.com
#hug#전세금 반환#피해 세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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