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수출 사업초기엔 정치개입 지양하고 사업성 우선으로 접근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21일 16시 22분


“원전 수주는 사업초기 정치적 판단을 지양하고 사업성 우선으로 접근해야 한다.”

2009년 12월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자력발전소 수주를 이끈 김쌍수 전 한국전력공사 사장은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기술력을 먼저 인정받는 게 중요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천문학적 자금과 10년이 넘는 건설기간이 소요되는 원전 건설 특성상 수주에 앞서 엄밀한 사업성 평가가 선행돼야한다는 것. 바라카 원전은 한국의 첫 수출 원전으로 수주액이 400억 달러(현 환율 기준 약 52조 원)에 이른다. 김 전 사장은 “원전 수주 당시 이명박 정부는 바라카 원전사업이 가시화되기 전까지 일절 개입하지 않고 기다렸다”며 “정부는 수주전이 본격전으로 이뤄질 때에야 적극적으로 지원해줬다”고 회고했다.

윤석열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원전 수출진흥에 본격 나서면서 바라카 원전 수출 경험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 최근 UAE와의 대규모 투자협약에는 바라카 원전 수출이 한몫했다는 평가다.

김 전 사장은 1969년 LG에 입사해 LG전자 부회장을 지냈다. ‘공기업 방만경영 탈피’라는 이명박 정부 방침에 따라 2008년 8월 한전 최초의 민간 최고경영자(CEO) 출신 사장에 임용돼 바라카 원전 수주를 이끌었다. 다음은 김 전 사장과의 일문일답.

―바라카 원전 수주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보통 선진국에서의 원전사업은 ‘선(先)투자 후(後)회수’다. 즉 론(Loan·대출)을 일으켜야 하는 부담이 있다. 하지만 UAE 원전사업은 UAE가 건설에 필요한 모든 자금을 대기로 했다. 쉽게 말해 내 돈 안들이고 사업을 할 수 있는 ‘황금어장’이었다.”

―당시 경쟁 대상이 미국 GE-일본 히타치 컨소시엄 등 원전 강자들이었다.


“세계 원전 전문가들은 한국의 원전 수주 가능성을 5% 내외로 봤다. 그만큼 수주 가능성은 매우 낮은 것으로 전망됐다.”

―수주를 위해 별도 조직인 워룸(War Room)을 만들었는데.

“2009년 5월 입찰자격을 획득하자마자 지하 2층에 445㎡ 규모의 워룸을 만들도록 했다. 일종의 전시 상황실 같은 곳인데 한전과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전력기술, 한전KPS, 한전원자력연료, 두산중공업, 현대건설, 삼성물산 등 사업 핵심 관계자 80여 명을 이곳에 모았다. 워크숍을 열고 원전 입찰서류를 만들고 UAE의 자료 요청에 대응하는 조직이었다.”

―워룸을 별도로 만든 이유가 있나.


“나는 LG에 있을 때도 혁신을 많이 시도했다. 당시 인력을 특정 프로젝트에 투입할 때 현업부서에서 나오게 해야한다는 신조가 있었다. 집중력을 높여 성과와 실적을 내야하기 때문이다. 당시 LG 혁신을 이끈 경험으로 워룸을 만들었다.”

―당시 워룸 분위기는.

“전쟁에 나서는 자세로 수주전에 임하라는 뜻에서 워룸으로 명명했다. UAE 측 관계자가 ‘원전 입찰을 진행하면서 워룸까지 만드는 곳은 못 봤다’고 하더라. 직원들이 야전침대를 갖다 놓고 7개월간 워룸에서 살다시피했다. 근처 식당 두 곳을 빌려 세끼를 다 해결하도록 했다. 그만큼 절실했다.”

―정부 지원은 언제부터 이뤄졌나.

“한국이 서류심사를 1등으로 통과하고 나서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UAE 왕세자(현 대통령)가 ‘정부간 소통이 있으면 좋겠다’며 이명박 전 대통령과의 통화를 원했다. 그는 당시 군사력 증강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원전 외에 UAE가 도움을 받을 게 없는지 이 전 대통령에게 물었다. 정부는 그 즉시 협상팀을 꾸리고 40여명을 UAE로 보내 아크부대 창설이 이뤄졌다. 최종 계약 전날 이 전 대통령과의 만찬에서 ‘필기는 한전이, 면접은 대통령이 했다’고 내가 말했다.”

―향후 원전 수주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유념할 건 무엇인가.


“발주국의 정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원전은 정부간 프로젝트다. 정치가 불안하면 성공하기 힘들다. 원전 사업기간이 워낙 긴데다 정치불안으로 경제가 흔들리면 수익성도 악화될 수 있어서다. 내가 한전 사장으로 있을 때 UAE에 이어 튀르키예 원전 입찰이 나왔다. 하지만 수익성이 너무 떨어져 참여하지 않았다. 그걸 일본이 가져갔는데 결국 건설을 포기하고 빚만 잔뜩 가져갔다. 그 때 우리가 그 사업을 수주했다면 나는 지금 ‘역사의 죄인’이 됐을 거다.”

―원전 수출에 대해 조언할 게 있다면.

“현재 한전과 한수원이 각각 원전 수주 활동을 벌이고 있는데 이걸 일원화할 필요가 있다. 비즈니스 역량에선 한전이 앞서고, 기술 역량에선 한수원이 앞서는 것을 잘 조합해 ‘원팀’으로 나가야한다는 거다. 특히 국제금융시장에서 대출을 일으킬 때도 한전의 조달금리가 한수원보다 낮다. 바라카 성공모델도 있지 않은가. 또 수주는 시간을 갖고 천천히 진행해야한다.

건설에만 10년이 걸리는 데 각 단계별로 문제가 생기면 누가 책임을 질 건가. 수주 과정을 정권의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도 지양해야한다.”

바라카 원전 건설사업 개요
▲계약일 : 2009년 12월 27일
▲발주처 : UAE원자력공사(ENEC)
▲내용 : 한국형 원전 APR1400 4기 건설(총 5600MW 발전용량) 및 핵연료 공급, 운영지원
▲현황
-2021~2022년 1, 2호기 상업운전 개시
-지난해 6월 3호기 시운전 최종단계
-현재 4호기 발주처에 계통인계 및 운영준비 중

바라카 원전 수주 일지
▲2008년 12월 31일 UAE 측 한전에 사업참여 요청
▲2009년 5월 5일 한전, UAE 원전사업 입찰자격 획득
▲2009년 6월 22일 한국-UAE 정부간 원자력협력협정 체결
▲2009년 7월 3일 한전, 최종 입찰서 제출
▲2009년 9월 4일 우선협상대상자에 한전, GE-히타치 컨소시엄, Areva(프랑스) 선정
▲2009년 12월 27일 한전 최종사업자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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