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Special Report]“매끼 채식 힘들면”…플렉시테리언 문턱 낮춰라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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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들을 위한 플랫폼 개발

채식을 선택한다는 것은 반드시 채식주의자가 돼 매 끼니를 풀만 먹는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단 한 끼의 식사라도 육식을 대체하려고 노력했다면 그 역시 채식을 선택한 것이다. 최근 육식을 완전히 배제하는 엄격한 수준의 채식을 실천하지는 못하지만 간헐적으로나마 채식을 실천하는 유연한 채식주의자, 즉 ‘플렉시테리언(Flexible+Vegetarian)’이 늘고 있다. 이렇게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채식을 선택하고 있는 이유는 그 자체가 ‘목적’이어서가 아니라 채식이 인류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주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한편 이러한 라이프스타일과 식습관 변화에 따른 비즈니스 모델 개발은 좋은 사업 기회도 될 수 있다.
○ 채식의 목적
사람들이 채식을 통해 해결하려는 문제는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환경오염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위기의식이 사람들을 채식으로 이끌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자연재해 뉴스를 접하면서 기후변화가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힘을 합해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개인 차원에서 탄소배출량을 가장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는 선택지가 바로 채식이다. 한 끼의 식사를 일반식에서 채식으로 바꾸면 1회당 약 3∼4kg만큼의 탄소배출량이 줄어든다는 연구도 있다.

두 번째는 동물 복지다. 무엇보다 공장식 축산에 대한 반감이 채식을 촉발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특히 공장식 가축 사육 시스템을 비판하는 다큐멘터리를 넷플릭스 등을 통해 보고 인식이 바뀌어 채식에 눈을 뜨는 사례가 많다. 이와 동시에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 역시 동물 복지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있다. 가정에서 시작된 동물에 대한 애정이 다른 동물로 확장되고 있는 셈이다.

세 번째는 건강관리다. 채식이 육식보다 과연 더 건강한지를 두고는 논쟁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풍요병’으로 인한 건강 문제가 심각하고 고기나 가공육을 지나치게 많이 섭취하는 데 따른 비만, 당뇨, 고혈압 등이 만연해 있다. 과도함을 경계한다는 의미에서 가벼운 채소나 과일 위주의 식단은 건강식이 될 수 있다.
○ 채식주의자가 겪는 불편함
하지만 한국에서 이런 이유로 채식을 선택한다는 것은 불편함을 감수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국내에서 채식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들 전체 인구 대비로는 아직 소수이기 때문에 채식을 위한 사회적인 인프라가 미국이나 유럽보다 현저히 부족하다. 가장 큰 문제는 ‘식당의 채식 메뉴 부재’다. 한국에서는 오롯이 채식으로만 먹을 수 있는 메뉴를 찾아보기가 정말 어렵다. 실생활에서 모든 재료를 파악할 수도, 맞춤형 메뉴를 만들 수도 없기에 크고 주요한 재료만 빼게 되는 절충안에 머무르게 된다.

다음으로 식재료 구매의 어려움도 큰 문제다. 대부분의 공산품은 식물성 성분으로 돼 있지 않기 때문에 성분표를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그런데 표시된 텍스트만으로 성분이 식물성인지 아닌지를 일반인이 식별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그래서 표시된 부분만 체크하거나 알레르기 성분만 대강 확인하고 넘기게 된다.

마지막으로 인프라 부족에 따른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빼놓을 수 없다. 식사는 단순히 신체 활동에 필요한 영양분을 얻는 행위가 아니다. 회사에서는 커뮤니케이션 기회가 되기도 하고, 대인 관계에 있어 사교의 장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종류가 제한된다는 것은 곧 이런 모임으로부터 단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채식을 한다고 밝히는 순간 장소 선정에서부터 어려움이 생기기 때문에 지인들에게 ‘유난 떤다’는 인식을 심어주게 된다. 또한 환경이나 동물 등 어떤 가치를 위해 채식을 한다고 이야기하면 상대방이 은연중에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 자신에 대한 비난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사회적인 고립을 초래한다.
○ 채식 비즈니스의 지향점
이에 따라 채식 플랫폼 비즈니스의 목적은 채식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불편함을 해소하고 미충족 수요를 해결하는 것이 돼야 한다. 가장 시급한 문제가 바로 점심 식사 해결이다. 물리적으로 채식 식당을 찾아다닐 여건이 안 되고 맞춤형 메뉴를 요구하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 이런 식당과 메뉴의 데이터베이스를 늘려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아울러 채식 상품을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채식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런 노력이 물리적인 장애물 제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다음 단계는 사회문화적인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다. 사회적 고립을 경험하는 채식주의자들에겐 다른 사람과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어울리면서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는 게 굉장히 중요한 만큼 채식 지향 인구를 연결하는 다리가 돼야 한다.

이처럼 일상에서 겪는 불편함을 하나씩 없애다 보면 지금보다는 시간과 노력을 덜 들이고도 더 많은 사람이, 더 자주 채식을 선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사람들의 ‘목적’이 무엇이든 채식이라는 ‘수단’을 더 편하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채식 비즈니스가 나아가야 할 궁극적인 방향이다. 채식 지향 인구를 연결하고 관련 상품과 서비스가 한곳에 모일 수 있도록 플랫폼을 구축해야 하는 이유다.

박상진 비욘드넥스트 대표 sjpark@beyondnext.net
정리=김윤진 기자 truth311@donga.com
#dbr#special report#채식#플렉시테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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