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갈등에…“반도체 업계, 글로벌 생산전략 수정 불가피”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7월 19일 14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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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중국 내에서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19일 국내 반도체 기업 한 고위 임원은 이 같이 말했다. 17일(현지 시간) 네덜란드 정부가 미국의 압력으로 자국 기업 ASML이 만든 극자외선(EUV) 노광장비의 대중 수출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였다.

그는 “메모리반도체 생산 공정에서 EUV 노광장비 도입이 초기 단계인 만큼 당장 매출, 영업이익에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짧게는 3년 뒤의 글로벌 생산 전략을 새로 짜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급해진 곳은 SK하이닉스다.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無錫)에서 메모리반도체 D램 생산공장을 운영 중이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첨단 장비 반입을 막는 미국의 대중 압박이 지속될 경우 최첨단 메모리반도체 생산이 사실상 불가능해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SK하이닉스는 올해 2월 총 4조7500억 원을 투자해 ASML로부터 5년간 EUV 노광장비 구매 계약을 맺었다고 공시했다. EUV 장비 가격이 대당 1500억~2000억 원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약 20여 대 안팎의 EUV 장비 도입이 가능한 액수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구입한 EUV 노광장비를 중국으로 들여갈 방법이 없어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경기 이천 본사 생산공장과 중국 우시 공장에서 생산하는 메모리반도체는 약 2세대 정도의 격차를 두고 있다”라며 “이천 내 D램 생산에 EUV 공정을 막 적용했으니 이르면 내년 하반기 혹은 2023년 중국 EUV 장비 도입 시기를 염두에 두고 있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이달 초 처음으로 EUV 공정기술을 적용한 10나노급 4세대(1a) 8Gbit(기가비트) LPDDR4 모바일 D램의 양산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네덜란드 ASML이 생산하는 EUV 노광장비는 반도체 초미세공정의 핵심 장비다. 반도체 원판인 실리콘 웨이퍼에 7나노미터(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이하 미세 회로를 새길 수 있는 유일한 장비다. 다만 한 대 생산에 2년 가까이 소요돼 ASML도 일 년에 45~50대 정도의 물량을 생산할 수밖에 없다. 이 장비없이 최첨단 칩을 생산할 수 없는데다 생산 물량이 제한적이라 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TSMC 등 모두 이 장비 확보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중국 산시성 시안(西安)에 낸드플래시 생산라인을 운영 중이지만 당장은 대중 장비 반입 제한의 영향권 밖에 놓여있다. EUV 공정기술 적용이 D램, 파운드리에 집중돼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들 역시 중국의 반도체 공급망을 겨냥한 미국의 압박 수준 및 진행상황 등을 두고 촉각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미국 투자 확대를 바탕으로 한 대응 방안을 후보로 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170억 달러(약 20조 원) 규모의 미국 텍사스주 파운드리 신규 공장 투자를 앞두고 있다. 앞서 로이터통신 등 외신들은 “삼성전자가 미국 내 두 번째 파운드리 공장을 텍사스주 중부 윌리엄슨 카운티에 짓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서동일기자 d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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