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후공정 판도 바꾸겠다”… 초소형 고성능 패키징 승부수

김광현 기자 입력 2021-04-29 10:03수정 2021-04-29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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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체인저]<3>네패스
사각형 패널(FOPLP) 기술로 가격경쟁력 확보
올해 초 정칠희 삼성전자 고문이 네패스의 회장으로 영입됐다. 정 회장은 삼성전자를 세계 최대의 ‘반도체 왕국’으로 이끈 주역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1979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뒤 반도체 메모리개발담당 수석연구원으로 시작해, 반도체총괄 시스템 LSI사업부 LSI개발실 실장, 반도체연구소 소장을 거쳐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원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동문회 회장도 맡고 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본사에서 만난 정칠희 회장. <당신은 슈퍼스타입니다>는 이 회사의 기업문화를 보여주는 캐치프레이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이 정도의 거물급 인사라면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다. 전망 없는 회사에서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결과마저 좋지 않다면 이제까지 쌓아올린 자신의 평판마저 훼손될 수 있어서다. 정 회장이 40년간 재직한 삼성전자의 다음 행선지로 네패스를 선택했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 창업자 이병구 회장이 왜 정 회장을 영입했다고 보시나?

“이 회장에게 물어보셔야 되는데…. 먼저 최근 반도체산업의 흐름을 한번 보자. 아시다시피 한국 반도체 산업은 메모리 위주로 성장해 왔다. 비메모리 산업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후공정인 OSAT(Outsourced Semiconductor Assembly and Test 반도체 패키지·테스트 외주업체)를 포함해 전반적으로 취약한 생태계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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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메모리 제조 기반의 산업 생태계는 대만 등 중국계 업체에 편중돼 있다. 그런데 글로벌 칩 메이커들의 제조기지 이원화의 요구가 강해지고 있다.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손에 반도체 웨이퍼를 들고 기자회견을 한 데서 보듯이 반도체 공급망 안정화 문제는 미중 반도체 갈등 과정에서 매우 시급하고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다.

삼성전자 등 국내업체들도 메모리처럼 일괄공정으로 제조하던 비메모리 제품을 외주 생산 생태계를 활용하여 효율을 높이는 현상 또한 가속화하고 있다. 이 같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하여 최근 국내 시스템반도체 플레이어들이 각자 분야에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해외 시스템반도체 고객들의 공급 채널 이원화가 본격화되고, 국내 기업들이 제조 인프라 확대와 공급 지배력 강화라는 선순환 사이클에 올라타게 된다면 국내 OSAT산업은 고속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네패스도 이런 국내외 흐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비메모리 분야의 후공정도 패키지와 테스트 등으로 세분화되고 연구개발에도 박차를 가해야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를 총괄할 사람이 필요하지 않았겠나 싶다.”

- 본인이 네패스를 선택한 이유는?

“이 회장은 2010년 무렵 내가 나노융합 산업연구조합 이사장으로 있을 때부터 같은 회원으로 알고 지냈다. 중소·중견기업들은 회사가 일정 규모 이상으로 커지면 그 상태에서 만족하고 더 이상 키우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더 커봐야 골치 아픈 문제도 많이 생기고, 가업승계 문제도 있는 것 같더라.

그런데 네패스는 창업자 본인이 다른 길을 엿보지 않고 반도체 사업을 확장하는데 열정을 보이고 있다. 최근 수년간 공격적으로 투자 계획을 세우고, 집행도 많이 했다. 창업자의 열정이나 이미 보유한 기술적 역량을 보건데 네패스는 발전 잠재력이 대단히 높다고 봤다.”

네패스 이 회장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그 영향이 회사 전반에 물씬 배어있다. 회사이름인 ‘네패스’도 히브리어로 생명이란 뜻을 지닌 ‘네패쉬’에서 따왔다고 한다. 명품 장수 기업이 되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았다.

일정 규모의 성과를 이룬 뒤에도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발전을 추구하는 벤처기업인 가운데 종교적 신념이 강한 오너를 자주 볼 수 있다. 사업을 단순히 부의 축적 수단으로 보지 않고 하늘이 자신에게 부여한 소명으로 여기는 경향 때문이다. 네패스도 그런 기업이 아닐까 싶다.

- 구체적으로 네패스가 가진 핵심 기술, 이 분야 ‘게임 체인저’라고 부를만한 기술은 무엇인가?


네패스의 600mm FOPLP는 12인치 웨이퍼. 기존 것보다 5배 분량을 동시에 제조하는 효과가 있다.

“팬아웃 패널레벨 패키지(FOPLP) 기술과 이를 활용한 초소형, 고성능 반도체 패키징 기술이다. 반도체 공정이 미세화되면서 반도체칩과 외부로 연결해야할 전도 패드의 면적이 작아져서 반도체칩의 바깥쪽으로 RDL(Re-distribution, 재배선)공정을 활용하여 확장한다. 이를 팬아웃(Fan-out) 패키지라고 한다.

현재 가장 많이 사용하는 팬아웃 패키지는 12인치(직경 300mm) 크기 원형 모양의 웨이퍼공정으로 만들고 있다. 반면에 네패스는 600mm 정사각형 패널공정으로 제조한다. 단순 계산으로 하면 12인치 웨이퍼의 5배 분량을 동시에 제조하는 효과가 있다. 원가경쟁력 측면에서 월등히 앞설 수 있다. FOPLP는 글로벌 대형 고객사들로부터 특별히 주목받고 있는 네패스의 고유 기술이다.”

- 2019년 테스트 사업부서를 자회사 형태인 ‘네패스아크’로 나눴다. 이유는? 그리고 앞으로도 사업부서를 자회사로 계속 분사할 계획인가?

“미래 성장성과 전문성 강화를 위한 투자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다. 현재 시스템 반도체 산업은 신기술 도입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한국에서는 첨단 시스템 반도체 산업 성장에 참여할 수 있는 기업 자체가 많지 않기 때문에 네패스처럼 준비된 몇 개 기업에 역할이 쏠리고 있다. 이에 대규모 투자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구조가 필요했고 실제 분할 자회사들은 대규모 자금을 확보하며 성장성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이는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 성장 초입 단계라는 시그널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대만은 이미 테스트와 패키지, SiP와 같은 각각의 전문 영역에서 다수의 기업들이 성장하며 견고한 생태계를 구축했다. 국내에 시스템 반도체 관련 후공정 업체들이 신설되는 모습들은 이러한 생태계 기반 형성 초입 단계의 자연스러운 현상인 듯하다.”

- 네패스아크만 상장돼 있는데, 다른 자회사들의 상장 가능성은?

“현시점에서 계획된 내용은 없으나 각 사업의 성장세와 규모에 따라 자금 조달의 방법은 기업공개를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 향후 사업 전개 방향성? 차세대 기술로의 방향은?

40년간 재직한 삼성전자의 다음 행선지로 네패스를 선택한 정칠희 회장이 회사 비젼을 설명하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중기 전략은 FOPLP를 통한 점유 확대로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첨단 기술 시장에서 진입장벽을 높이고 규모의 경제를 확보해 수익기반을 다지는 것이 우선이다.

FOPLP라는 혁신 공정은 네패스라는 작은 기업이 대만의 대형 OSAT들과 첨단 패키지 시장에서 규모(Capacity)로도 경쟁할 수 있는 기술이다. 네패스는 2015년 이미 FOWLP(팬아웃 웨이퍼레벨 패키징)로 프리스케일의 원 칩 모듈을 구현한 바 있다.

2.5D나 3D 패키징 같은 차세대 기술도 당연히 FOPLP 로드맵에 포함돼 있다.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글로벌 고객들의 요구를 반영해 지속 개발을 추진 중이다.”

- 현재 영위하고 있는 사업 이외 영역으로 확장할 가능성은?


“백엔드 파운드리 사업은 소재, 부품, 장비의 수요 주체로서 산업의 동반성장을 견인하는 비즈니스이다. 회사는 백엔드 파운드리 사업에 있어서 절대적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설계, 재료, 소프트웨어, 장비 기술 등의 영역에서도 회사의 역량을 기울이고 있다. 당장은 시장에 필요한 반도체 첨단 공정 서비스 공급자로서 충실히 생태계 구축의 기반 역할을 하는 것이 먼저라고 본다.”

김광현 기자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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