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자루 쥔 현산 “가격 깎아달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10일 03시 00분


HDC현산 “아시아나 인수 조건 재검토”

“인수 의지를 밝히라”는 채권단의 최후통첩에 HDC현대산업개발이 “가격을 깎아주지 않으면 포기할 수도 있다”고 맞서면서 아시아나항공 인수 협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일단 칼자루는 HDC현산이 쥔 모양새다. 마땅한 대안이 없는 채권단으로선 HDC현산과 원만한 합의를 이루는 것이 최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측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을 경우 계약이 깨지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 인수조건 변경을 둘러싼 ‘기싸움’ 시작
9일 HDC현산은 KDB산업은행에 보낸 입장문 첫머리에서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지에 변함이 없다”고 못 박았다. 지난달 29일 채권단이 “6월 27일까지 인수와 관련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라”는 내용증명을 보낸 것에 대한 답변이다.

하지만 HDC현산은 공을 다시 채권단에 넘겼다. 입장문에서 “계약을 체결할 당시에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인수가치를 현저히 훼손하는 여러 상황들이 명백히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HDC현산 측이 실사 당시 확인했을 때보다 부채가 4조5000억 원 늘었다는 것이다.

채권단도 인수조건 변경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타격 등으로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가치가 지난해 인수계약 체결 당시의 가격인 2조5000억 원보다 떨어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채권단의 당면 목표는 ‘성공적인 계약 종결’이기 때문에 일단 HDC현산과 협상 테이블에 앉겠다는 계획이다. 채권단 고위 관계자는 “HDC현산의 요구를 예상하고 있었다”라며 “구체적 조건을 제시하면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관건은 HDC현산이 어떤 조건을 제시할지다. 일단 채권단 내부에선 HDC현산 측이 매각 가격을 낮춰달라고 요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말 HDC현산은 금호산업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지분 30.77%를 3228억 원에 매입하기로 했다. 당시 주당 4700원을 적용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항공업계가 타격을 받으면서 아직 계약 당시 주가를 회복하지 못한 상태다. 하지만 계약 당사자인 금호산업이 이에 응할지는 미지수다.

영구채 5000억 원을 출자전환하는 방안도 협상 테이블에 올려질 가능성이 크다. HDC현산 입장에서 고금리의 영구채를 출자로 전환하면 금융비용이 사라지게 된다. 채권단 입장에선 아시아나항공의 지분을 새로 취득해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기업 구조조정’ 관점에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채권단 고위 관계자는 “과거 대한전선 매각 사례를 보더라도 채권단이 차입금을 출자전환해 구조조정에 나선 바 있다”라고 했다. 이와 함께 40조 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을 통한 추가 지원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무리한 요구라면 계약 무산, 특혜시비 우려”
양측이 다시 협상에 나서면 계약 종결 시한은 기존 6월 27일에서 12월 27일로 연기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양측의 입장차가 작지 않아 재협상이 결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채권단은 계약 종료에 대비한 ‘플랜B’를 마련해 둔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단은 최근 국내 법무법인을 통해 일본 국적항공사인 일본항공(JAL)의 기업 정상화 사례를 검토했다. JAL은 2010년 기업회생절차(옛 법정관리)에 들어가 약 6조 원의 부채를 탕감하고 공적기관 격인 기업회생지원기구로부터 3조8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받는 등 총 13조 원의 공적 자금을 받았다.

채권단은 아시아나항공 역시 계약이 결렬되면 워크아웃 등을 체결한 뒤 채무를 일정 수준 조정하고 출자전환을 시행할 계획이다. 채권단 고위 관계자는 “국책은행은 계약 성사보다 특혜 시비를 더 우려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무리한 요구까지 받아줄 수는 없다”고 했다.

김형민 kalssam35@donga.com·장윤정 기자
#아시아나항공#hdc현대산업개발#인수 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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