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Special Report]유비무환… 팬데믹 공포 이겨내는 ‘팬데믹 플랜’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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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 대유행 시대 기업의 생존전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확인했듯 오늘날 글로벌 기업들은 여러 형태의 전염에 더 취약해지고 있다. 금융이나 보건 문제처럼 전염성 강한 이벤트들이 인적 네트워크와 밀접히 연결된 공급망을 통해 번지면서 여러 국가와 산업에 동시다발적으로 충격을 주기 때문이다. 특히 감염병 대유행은 한 번 유행하면 최소 8주 이상 이어지고, 인적 자산인 임직원들에게 미치는 직접적인 피해가 크다. 광범위한 지역에 영향을 미쳐 거점 업무지역 활용이 불가능하고, 업무 정상화가 어렵다는 특징도 있다. 이뿐만 아니라 사회 재난으로 번질 수도 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업무지속계획(BCP)을 마련해 갑작스러운 위기와 재난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 발빠른 업무지속계획 가동

실제로 이번 코로나19 발발 이후 기업들은 빠르게 업무지속계획을 가동함으로써 비즈니스 핵심 업무의 연속성을 확보했다. 한 예로, 글로벌 기업 A사는 중국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는 뉴스가 나온 올해 1월 중순부터 인트라넷 상단에 매일 감염병 유행 상황을 시시각각 업데이트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아울러 비상시에만 가동하는 회사 위기관리팀은 전 세계 사업장을 모니터링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지했고, 보건 전문가로 구성된 보건안전팀이 해외 출장, 집회 참석, 직원 건강 관련 정보를 전달했다. 고객 및 협력사 문의에 대해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할지도 설명하고, 감염자가 많이 발생한 지역에는 곧바로 재택근무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다른 글로벌 장비 제조업체 B사도 올해 1월부터 공급망 돌발 상황 관리(SCIM·Supply Chain Incident Management) 조직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SCIM 조직은 코로나19로 향후 24시간 내 선적과 수입이 영향을 받을 것을 가정하고, 공급망 운영을 정상으로 회복하는 데 필요한 모든 조치를 파악했다. 사전 상황 보고와 분석 덕분에 이 기업은 긴급 대응팀을 구성하고,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복합 기능 조직화, 인력 기동 및 배치 등을 진행할 수 있었다.

이 밖에도 글로벌 금융회사 C사의 서울지점 역시 올해 2월 감염병 대유행을 가정한 BCP 훈련을 경기도에 미리 마련한 대체 사업장에서 실시했다. 훈련 직후 회사는 곧장 8주간에 걸친 분산 근무에 돌입했고 서울지점과 대체 사업장을 동시에 운영하며 비즈니스의 연속성을 확보했다.

○ 시나리오별 플래닝 필요

사례로 든 기업들이 이처럼 발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던 까닭은 2009년 신종플루 대유행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리 팬데믹 플랜을 갖춰 놓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신종플루 유행 때는 대기업들조차 개인위생 강화, 감염자 격리 정도의 소극적 활동을 하는 데 머물렀지만, 올해는 필수 인원 제외 재택근무, 층별 인력 재배치, 대체 사업장 등 가용 시설로의 인력 분산 배치, 출근 시간 시차 조정 등을 시행하는 비상 체제에 바로 돌입할 수 있었다. 2009년 이후 클라우드 시스템 환경을 기반으로 하는 유연한 모바일, 원격 근무가 언제든 가능하게 됐고, 제조업의 생산 공정 역시 자동화 무인화된 것도 변화를 뒷받침했다.

앞으로도 감염병 대유행 상황에서 기업들이 주요 핵심 업무의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주요 사업장 사용 불가, 임직원 대량 결근, 광역 재해 발생 등 영향에 따른 시나리오별 BCP를 마련해 둬야 한다. 각각의 잠재 위협에 대비해 시나리오별 고려사항을 수립해야 한다는 얘기다. 가령 A사의 팬데믹 플랜은 사업장 폐쇄에 대비해서는 재택근무와 스마트 오피스 운영을, 가족 돌봄 등이 필요하거나 업무 과부하로 결근 직원이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서는 대체 인력 교육을 추진하는 식의 방안을 명시해 놓았다.

C사가 코로나19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었던 것도 BCP에 해당하는 공급망 돌발사고 관리 플레이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플레이북은 다양한 장소에서 전형적으로 발생하는 업무 중단 형태들을 기술해 놓았다. C사는 똑같은 실수의 반복은 용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토대로 돌발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새 플레이북을 만들어 재발을 방지한다. 플레이북에는 지역 내 얼마나 많은 공급업체가 있는지, 그들이 어떤 부품이나 제품을 만드는지, 그들이 사건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는지, 공급업체에 문제가 생겼을 때 예비 대책이 있는지, 현장에 미치는 영향의 크기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의 질문이 열거돼 있다. C사는 그동안 이 질문 체크리스트, 참고할 만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연례 모의훈련을 실시하면서 생산에 차질이 생길 때의 대처 방안을 마련해 뒀다.

과거 신종플루가 그랬듯 코로나19 사태는 기업들 입장에서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팬데믹 플랜을 점검하고 재정비할 절호의 기회다. 일단 한 번 위기를 겪고 나면 과거보다 훨씬 더 자신의 비즈니스, 주요 공급업체와 협력업체, 이해관계자, 비즈니스의 취약점을 이해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팬데믹 플랜은 총 11단계로 구성돼 있다. 먼저 계획과 절차를 마련한 뒤 기업의 핵심 기능을 정의하고, 권한을 위임하고, 대체 업무 시설을 운영하고,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여는 등의 단계가 필요하다. 그다음 주요 문서와 데이터, 인적자원을 관리하고, 필요할 경우 통제 및 지시권을 이양하고, 관리자들을 교육하고, 업무를 정상화하고, 팬데믹 장기화에 대비한 추가 실행 계획까지 수립해야 한다. 이 단계를 충실히 밟는다면 이번 감염병 대유행은 기업들이 회복 탄력성을 강화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류종기 한국시스템안전학회 이사 resilience@korea.ac.kr

정리=김윤진 기자 truth311@donga.com
#코로나19#팬데믹 플랜#업무지속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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