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주식 5000억원 손실 본 엘리엇… “자사주 12조 사라” 지배구조개선 또 압박

  • 동아일보

“초과자본 풀어 주주에게 환원을”… 이사진에 지배구조개선 촉구 서신
“주총서 유리한 위치 선점 노린듯”


미국 투기펀드 엘리엇이 현대자동차그룹에 자본과 자산을 헐어 주가 하락에 따른 손실을 만회하라는 취지로 압박에 나섰다.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이 미뤄질 가능성이 커지자 다시 행동에 나선 것이다.

엘리엇 계열 펀드 투자자문사 엘리엇 어드바이저 홍콩은 13일 밤 “현대모비스, 현대차, 기아차 이사진에 주주 환원 정책과 기업 지배구조 개선 협업을 요구하는 서신을 보냈다”고 보도자료를 냈다. 현대차그룹은 5월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중단한 바 있다. 그 후 엘리엇은 9월에 현대모비스를 분할한 후 각각 글로비스, 현대차와 합병할 것을 요구한 데 이어 이번에 두 번째 압박을 한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따로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엘리엇은 우선 주주 환원 정책을 요구했다. 엘리엇은 “현대차그룹은 심각한 초과자본 상태다. 현대차는 8조∼10조 원, 현대모비스는 4조∼6조 원에 이르는 초과자본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소 12조 원 규모의 자본을 풀어 자사주 매입 등 주가 하락에 따른 손실을 만회해 달라는 의미다.

모든 비핵심 자산에 대한 전략적 검토를 하라고도 주장했다. 이는 서울 강남구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부지 매각을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요구는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이다. 엘리엇은 “기존 개편안이 철회되고 반년이 지나도록 기업구조 개편을 진전시키기 위한 실질적인 소통을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현대차그룹 각 계열사 이사회에 독립적인 사외이사를 추가로 선임하는 등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해 엘리엇 및 다른 주주들과 협업하라”고 요구했다.

자동차업계는 주가 하락으로 손실을 본 엘리엇이 다급한 나머지 주주 환원 등을 요구한다고 보고 있다. 엘리엇이 현대차그룹 주주임을 처음으로 밝혔던 4월 4일 현대차 주가는 15만6500원이었다. 7개월여가 지난 14일 종가는 10만1500원으로 당시 대비 약 35.1% 하락했다. 글로벌 경제지 블룸버그는 최근 “엘리엇 지분 변화가 없다고 가정할 때 약 5억 달러(약 5683억 원)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현대차는 지배구조 개편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3분기(7∼9월)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76% 하락하는 등 실적이 10년 전 수준으로 후퇴했고, 미국의 25% 관세 부과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새로운 시도를 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새 개편안이 내년으로 미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강성진 KB증권 연구원은 “엘리엇이 먼저 현대차그룹 주주들을 설득함으로써 향후 있을 수 있는 (지배구조 개편 관련) 주주총회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려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엘리엇이 보유한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지분은 각각 3.0%, 2.1%, 2.6%에 불과하다. 소수 지분을 가지고 자산까지 팔라며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은 엘리엇이 외국인 주주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대차 외국인 지분은 46.4%로 절반에 육박한다. 이미 엘리엇의 공세로 5월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안이 중단된 바 있다.

엘리엇의 이런 전략은 삼성을 상대로도 효과를 거뒀다. 2016년 10월 엘리엇은 삼성에 △30조 원 특별배당 △사외이사 추가 △나스닥 상장 △삼성전자 인적분할 등 이른바 4대 요구로 압박했다. 한 달 뒤 삼성전자는 “2016년과 2017년 잉여현금흐름의 50%를 주주 환원에 활용하겠다”고 약속했고 이듬해인 2017년 1월 “9조3000억 원 규모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겠다”고 밝혔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엘리엇#현대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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