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세일러 교수 “시장은 합리적이지 않아… 인간 실수 예측해 투자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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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동아국제금융포럼]‘넛지’ 리처드 세일러 교수 기조강연

세계적 베스트셀러 ‘넛지’의 저자이자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리처드 세일러 미국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교수(오른쪽)가 
30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18 동아국제금융포럼’에 기조연사로 참여해 행동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세계적 베스트셀러 ‘넛지’의 저자이자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리처드 세일러 미국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교수(오른쪽)가 30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18 동아국제금융포럼’에 기조연사로 참여해 행동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시장은 합리적이지 않다. 시장 가격이 모두 본질적 가치를 반영하는 것도 아니다.”

리처드 세일러 미국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교수(73)는 30일 서울 중구 을지로 롯데호텔에서 열린 ‘2018 동아국제금융포럼’에서 기조강연자로 나서 ‘쿠바(CUBA)펀드’ 사례를 들며 “비합리적인 시장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행동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1994년 미국에서 출시된 쿠바펀드는 미국 주식에 69%, 나머지는 멕시코 주식에 투자하는 펀드다. 이 펀드는 쿠바 주식을 한 주도 담고 있지 않았지만, 이름이 ‘쿠바’라는 이유로 시장에서는 순자산가치보다 15% 낮은 가격에 거래됐다.

그러다 2014년 12월 쿠바펀드의 가격은 편입된 주식 가격 대비 70%나 뛰었다. 당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쿠바 제재를 해제하겠다고 발표한 덕분이었다. 세일러 교수는 “쿠바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펀드였는데 이름이 쿠바라는 이유로 가격이 뛰었다”며 “만약 한국에서 이름만 ‘북한’인 펀드를 만들었다면 지난 몇 주간 이 펀드의 가격 등락을 예측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인간의 실수를 예측해 행동에 투자하라”

세일러 교수는 인간이 항상 최선의 선택을 할 정도로 합리적인 ‘경제적 인간’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이런 점을 감안해 어떤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그는 행동경제학적 접근으로 투자에서도 성공한 전문가로 꼽힌다. 그는 1993년 행동경제학을 응용해 자산운용사 ‘풀러앤드세일러(Fuller&Thaler)’를 설립해 시장 평균을 크게 웃도는 투자수익을 내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 운용사의 ‘언디스커버드 매니저스 비헤이비어럴 밸류펀드’는 2009년 3월 이후 500%가 넘는 수익률을 올리기도 했다. 현재 그는 이 회사의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일러 교수는 “사람들의 실수를 예측하고, 사람들의 행동에 투자를 한다”며 “현재는 저평가됐지만 곧 가치가 오를 기업을 찾는다”고 투자 비결을 밝혔다. 그는 “예를 들어 가치가 오를 것으로 보이지만 시장이 주목하지 않는 기업을 찾아서 상황을 예의 주시하다가 이 회사의 내부자들이 주식을 사들이는 시점을 파악해 투자를 한다”고 설명했다.

○ “쉬운 선택지로 ‘넛지’하라”

세일러 교수는 정부 당국자와 금융기관, 기업들이 ‘넛지(Nudge)’ 이론을 활용하면 비합리적인 소비자들을 겨냥해 제품을 팔거나, 정책의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넛지의 사전적 의미는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인데 세일러 교수는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이라는 정의를 내렸다.

세일러 교수는 “선택하기 쉬운 선택지를 제공해 소비자들의 선택을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퇴직연금인 ‘401K’다. 2006년부터 근로자가 회사에 입사하면 자동으로 퇴직연금에 가입하도록 정책을 바꾸고 탈퇴하려면 신청서에 따로 체크하게 만들었더니 가입률이 90%로 올랐다.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가입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 때에는 가입률이 연령대별에 따라 20∼50%였다.

넛지는 세금 체납자에게도 효과를 발휘했다. 세일러 교수는 “세금 체납자에게 보낸 5가지 편지 중 가장 효과가 있었던 문구는 ‘시민의 90%는 적시에 세금을 납부한다. 당신은 세금을 내지 않은 소수에 해당한다. 당신이 세금을 내면 다양한 활동을 지원할 수 있다’는 문구였다”며 “넛지는 돈이 들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 북-미 정상회담 “비합리적 인간의 만남”

그는 행동경제학에 기반해 다음 달 12일 이뤄질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견해도 내놓았다. 세일러 교수는 “(인간은 비합리적인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더 비합리적이다”라며 “합리적인 경제 모델을 사용해서 어떤 행동을 할 것이라 예측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독일이 통일 모델을 제공하고 있는 것처럼 합리적인 세상이라면 한반도는 통일이 돼야 한다”며 “불행하게도 둘은 서로 크게 신뢰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고, 이 둘은 아직 어떤 거래에도 합의하지 않은 상태라 어려움이 있겠지만 희망적인 거래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 주요 참석자 명단 (가나다순) ::

▽금융계=김광수 NH농협금융지주 회장, 박종복 SC제일은행 행장, 박진회 한국씨티은행 행장, 손태승 우리은행 행장, 심성훈 케이뱅크 행장,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이용우 카카오뱅크 공동대표,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

▽금융 관련 협회=권용원 금융투자협회 회장, 김덕수 여신금융협회 회장, 김용덕 손해보험협회 회장, 김태영 전국은행연합회 회장, 신용길 생명보험협회 회장, 이순우 저축은행중앙회 회장

▽국책은행·공공기관=곽범국 예금보험공사 사장, 민성기 한국신용정보원 원장, 손상호 한국금융연구원 원장, 유광열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 윤면식 한국은행 부총재, 은성수 한국수출입은행 은행장

▽정·관계=김용태 국회 정무위원장, 최종구 금융위원장

▽연사 및 패널=강형구 한양대 교수, 김동하 금융감독원 금융행태연구팀장, 박동규 PwC컨설팅 파트너, 이승윤 건국대 교수, 장현기 신한은행 디지털전략본부장,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자문위원, 최승주 서울대 교수

강유현 yhkang@donga.com·김성모 기자
#리처드 세일러#넛지#2018 동아국제금융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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