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세계를 평정한 국내 반도체 업계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을 강화하며 시스템반도체 분야로 사업영역을 넓히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파운드리 시장의 절대 강자인 대만 TSMC를 추격하겠다는 각오다.
SK하이닉스가 100% 출자해 세운 파운드리 전문회사 ‘SK하이닉스 시스템아이씨’는 10일 충북 청주 본사에서 공식 출범행사를 열었다. SK하이닉스는 이 자회사를 통해 시스템반도체 사업 역량을 한층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준호 SK하이닉스 시스템아이씨 사장은 “공정과 기술서비스 역량을 강화하고 고객을 다변화해 수익성 기반의 장기 성장 가능성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파운드리는 보통 ‘위탁생산’으로 표현하지만 단순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과는 수준이 다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인텔처럼 일반인에게 친숙한 반도체 회사는 설계부터 생산·판매까지 자체적으로 하는 종합반도체기업(IDM)이다.
대부분의 반도체 업체는 설비투자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 설계와 판매만 하는 ‘팹리스’들이다. 대표적인 팹리스 반도체기업이 미국 퀄컴과 엔비디아, 영국 ARM 등이다. 파운드리 업체는 이런 세계적 업체들이 설계한 대로 반도체를 오차 없이 생산해내야 한다. 웬만한 기술과 노하우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한국이 휩쓸고 있는 메모리반도체는 소품종 대량생산이 가능하지만 중앙처리장치(CPU) 등에 주로 쓰이는 시스템반도체는 다품종 소량생산 수요가 많다. 국내 업체들은 메모리반도체에 집중하느라 파운드리 사업에는 상대적으로 투자가 적었다. 반도체 매출 세계 5위인 SK하이닉스조차 파운드리 사업만 놓고 보면 27위에 그친다. 설계까지 하는 IDM에 생산을 맡기면 기술이 유출될 수도 있다는 고객사들의 우려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파운드리를 키우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로 작용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오면서 메모리반도체 못지않게 자율주행차,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에 적용되는 시스템반도체 수요가 급격하게 늘었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파운드리 시장 규모는 569억 달러(약 65조4000억 원)로 1년 만에 13.5% 성장했다. 2021년까지 연평균 7.8%씩 성장해 시장 규모가 831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SK하이닉스는 4월 파운드리 사업부를 분사하기로 결정했고, 이번에 자회사로 출범시킨 것이다.
삼성전자도 시스템LSI사업부 내 팀이었던 파운드리 조직을 5월 별도의 사업부로 격상하고 공격적 투자에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는 북미시장에 공급하는 시스템반도체의 주력 생산공장인 미국 오스틴공장에 올해 상반기(1∼6월)까지 10억 달러(약 1조1500억 원)를 투자한 데 이어 2020년까지 15억 달러를 더 투입하기로 했다. 또 늘어나는 파운드리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4분기(10∼12월) 경기 화성사업장에 10나노급 생산설비를 증설할 계획이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반도체 시설투자에만 13조2000억 원을 들였는데 올해는 1분기 투자액만 5조 원에 이른다. 삼성전자는 11일 열리는 ‘삼성 파운드리 포럼 코리아 2017’에서 자사의 파운드리 사업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힐 계획이다.
국내 업체들의 최종 목표는 대만 TSMC다. 파운드리 세계 1위인 이 기업은 전체 시장의 50.6%를 차지하고 있다. 파운드리는 관련 제품이 매우 다양한 만큼 기술을 확보한 일부 품목과 틈새시장 위주로 경쟁력을 확보해 점차 격차를 줄여 나간다는 방침이다. 김 사장이 “200mm(반도체를 생산하는 재료인 웨이퍼 지름) 제품 시장에서 최고 경쟁력을 갖춘 회사로 거듭나겠다”고 밝힌 것도 300mm 제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추격이 쉬운 분야부터 공략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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