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준비 ‘꼴찌’… “한국경제 이대로면 남미꼴 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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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I 포럼서 경고 쏟아져

 
한국이 노동·기업 생산성을 높이고 산업 구조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으면 남미 같은 ‘위기반복형 경제구조’의 덫에 빠지게 될 거라는 경고가 국책연구원인 한국개발연구원(KDI) 세미나에서 제기됐다.

 최근 분기별 성장률이 0%대(전 분기 대비)에 머무는 저성장이 이어지고 최순실 씨 사태에 따른 국정 공백이 현실화하면서 이번 경고가 단순히 기우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게다가 선진국들은 앞다퉈 4차 산업혁명을 추진하는 가운데, 한국은 이와 관련한 규제 개혁마저 무산될 상황이어서 경제 회생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남미형 경제구조 우려”

 KDI가 최근 세종시 연구원에서 개최한 산업서비스포럼에서 한국 경제에 닥칠 위기 상황에 대해 이 같은 주장이 제기됐다. 주제발표에 나선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중견 대기업의 연쇄 도산과 중국발 경제 위기가 불러올 실물경기 침체에 대한 경고가 수년째 계속되고 있다”며 “최근의 경기 후퇴가 경제 위기로 옮아가면 ‘남미형 사이클’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남미형 사이클은 경제 위기와 반짝 반등이 알파벳 M자처럼 반복된다고 해서 ‘M커브’로도 불리는 현상이다. 한번 이 사이클에 빠지면 소득 정체와 내수 침체, 수출 감소 등이 이어지면서 저성장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장기 침체 조짐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팔리지 않고 쌓인 재고가 지난해 경제성장률(2.6%)에 기여한 부분이 1.1%포인트에 이른다. 소비 침체로 물건이 팔리지 않을 것을 감수하고 공장을 돌려 만든 제품들 덕에 그나마 2%대 성장률을 지켰다는 것이다.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을 가리키는 잠재 성장률도 빠르게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발간된 서울대 ‘경제논집’에서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차기 정부에서 잠재성장률이 1%대로 하락하고 구조개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강력한 위기가 오면 0%대 추락 시점이 더 앞당겨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영업이익으로 은행 이자도 못 갚는 ‘좀비기업’(만성적 한계기업)이 늘어나는 것도 한국 경제에 짐이 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좀비기업은 2012년 말 2965개에서 올 6월 말 3278개로 313개가 늘었다. 또 3278개 좀비기업 가운데 13.7%(524개)가 대기업이었다. 박 교수는 “대기업에 대한 경제력 집중이 심한 상황에서 이들이 위기에 빠져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 경제 위기가 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강조했다.
○ “4차 산업혁명 준비 더뎌… 개혁 서둘러야”

 한국 경제에 대한 이 같은 경고는 이전에도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KDI, 한국노동연구원,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등 10개 국책기관 연구원 및 교수들로 구성된 중장기전략연구작업반은 지난해 12월 내놓은 ‘대한민국 중장기 경제발전전략’에서 한국이 경제 패러다임을 바꾸고 정부가 효과적인 정책 대응을 하도록 주문했지만 현실은 과거 일본의 실패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할 거라는 경고가 나오고 있지만 위기 탈출을 위한 대응책은 여전히 부실하다. 주요 선진국이 성장의 새로운 돌파구로 꼽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준비에서 한국은 최하위 수준이다.

 올해 초 세계경제포럼(WEF) 조사 결과 한국의 4차 산업혁명 준비 수준은 비교 대상 국가 가운데 최하위인 25위였다. 노동 생산성이 떨어지는 등 산업구조 변화에 따른 적응이 늦다는 게 중요한 이유로 지적됐다. 전체 산업에서 서비스업 비중을 10%포인트 가까이 높인 싱가포르는 2003∼2013년 연평균 6.3%의 성장률로 과거의 고성장을 유지했다. 반면 한국의 연평균 성장률은 1992∼2002년 6.5%에서 이후 10년(2003∼2012년)간 3.8%로 떨어졌다.

 김주훈 KDI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과거 조립가공산업 성장의 원동력이었던 수직적 기업 분업구조가 혁신을 저해하고 있고, 대기업의 낮은 단가 책정으로 중소기업들은 혁신을 위한 자본 축적을 못하고 있다”며 “경제구조 유연화를 위한 규제 개혁에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이상훈 january@donga.com·손영일 기자
#4차산업혁명#한국경제#k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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