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짜고짜 “대선 관련주” 낚시질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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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세력-불법 투자자문업자 온상 된 ‘카톡 오픈 채팅방’ 들여다보니

 
“긴급속보 대선후보 ○○○ 관련주 등장, A사.”

 12일 증권시장이 마감된 오후 5시경 모바일 실시간 메신저인 카카오톡의 한 오픈 채팅방에 ‘ㄴ’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이용자가 이런 메시지를 올렸다. A사의 주가는 10%가 넘게 폭락해 1만5300원에 장을 마감한 상태였다. ‘ㄴ’이 A사를 대선 테마주라고 주장한 근거는 이 회사 공장이 대선 후보의 고향에 있다는 것 외에는 없었다. 그의 말을 믿고 투자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A사의 주가는 이후 꾸준히 하락해 19일 현재 주당 1만4000원 선에 거래되고 있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이달 9∼19일 카카오톡 주식 관련 오픈 채팅방 11곳을 모니터링한 결과 주가 조작이 의심되는 ‘작전세력’이나 미등록 유사투자자문업자들을 오픈 채팅방에서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지난달 말 한미약품의 늑장 공시 사태에서도 한미약품이 독일계 제약사인 베링거인겔하임으로부터 계약 파기를 당했다는 내용이 공시 전 오픈 채팅방에서 떠돌았다는 제보가 금융당국에 접수되기도 했다.

 오픈 채팅방은 카카오톡 사용자들이 공통 관심사에 대해 익명으로 얘기할 수 있게 만들어진 사이버 공간이다. ‘주식’이나 ‘증권’으로 오픈 채팅방을 검색하면 수십 개가 노출된다. 대부분 10명 미만의 소규모 채팅방이지만 일부 인기 채팅방은 400∼500여 명이 등록돼 있다.

 주식이나 증권 관련 오픈 채팅방은 무료로 종목을 추천해주는 ‘리딩방’, 유료회원들을 위한 ‘VIP방’으로 나뉘어 있다. 방장이 1∼2주 동안 무료 리딩방을 운영하며 자신의 투자실력을 보여준 뒤 유료 VIP방 가입을 권유하는 식으로 운영된다. 미공개 정보를 미끼로 유료회원을 만드는 미등록 유사투자자문업자들이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다. 오픈 채팅방에 참여하고 있는 한 누리꾼은 “유료회원의 경우 한 달에 적게는 30만 원에서 많게는 1년간 2000만 원 이상을 낸다”고 설명했다.

 유료회원이 되면 일대일 상담도 해준다고 유혹한다. 200여 명 규모의 한 오픈 채팅방의 방장은 “B종목이 시가총액의 반에 해당하는 신규 제약 수출 건을 다음 달 초에 발표한다”며 “(투자할 경우) 수익은 최소 80%를 본다”고 말했다. 그는 “10월 달에 유료회원이 돼야 해당 종목 이름을 말해준다”며 취재팀에 유료회원 가입을 슬그머니 권유했다.

 오픈 채팅방에서 미등록 유사투자자문업자와 작전세력들이 ‘떴다방’처럼 치고 빠지는 식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개인정보 문제 등을 이유로 금융당국의 단속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아직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의 단속 실적은 한 건도 없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지난달 말 오픈 채팅방 관련 신고센터를 열었는데 제보가 들어온 것은 아직 없다”며 “유료회원으로 운영되다 보니 수익에 대한 기대감을 놓지 못해 신고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 역시 “사생활과 개인정보 침해 우려가 있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오가는 대화 등을 단속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포털 사이트 등과 협력해 오픈 채팅방의 유사투자자문업자 등에 대한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와 함께 사후 처벌 강도도 높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실장은 “정보 유출자 외에 미공개 정보를 2차로 입수한 사람에 대한 처벌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대선관련주#오픈채팅#카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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