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로또 된 공공임대… 입주하려 스펙쌓기 경쟁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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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가 급등으로 행복주택 등 인기
입주자격 정보부족에 수요자 막막
강의 받거나 온라인카페서 공부

“노인을 세대주로” 편법 소개 많아
정작 필요한 계층에 불이익 우려

“장기전세는 공식이 있어요. 그것만 알면 당첨될 수 있죠.”

확신에 찬 강사의 말에 좁은 강의실을 가득 채운 수강생들은 눈빛을 반짝였다. 수강생의 대부분은 30, 40대. 100페이지가 넘는 책자에 색색의 형광펜으로 줄을 치고 필기하는가 하면 강사가 한 말을 잊지 않기 위해 따라 읊조리는 모습이 흡사 입시학원을 떠올리게 했다.

○ 온라인 카페에 오프라인 강의까지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동 교대역 인근 후미진 골목 안의 5층 건물. 4층에 있는 강의실에서는 장기전세와 국민임대, 행복주택 같은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강의가 한창이었다. 수강생들은 임대주택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 회원들. 이날 이들은 3만 원의 수업료를 내고 4시간짜리 강의를 듣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인 참이었다. 커뮤니티 운영자이기도 한 강사 이상용 내집마련연구소장은 매주 한 번씩 회원들을 대상으로 임대주택 관련 강의를 한다. 그는“2008년 보금자리주택 관련 사이트를 만들었는데 이번 정권 들어서 임대주택에 대한 정보 교류가 더 활발해졌다”고 했다.

최근 인터넷에서는 이처럼 공공임대주택 정보를 교환하는 온라인 커뮤니티가 늘고 그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오프라인 강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회원 수가 만 명 단위인 커뮤니티도 여러 곳이고 심지어 회원이 30만 명인 곳도 있다. 최근 일주일간 800개가 넘는 게시글이 올라온 한 커뮤니티에는 “저 정도 조건이라면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요?” “무주택 3년 이상에 (청약통장 납입횟수) 144회면 ‘고(高)스펙’”처럼 ‘당첨 자격’을 묻고 평가하는 글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 올라온다.

회원들의 스펙 쌓기 노력은 매우 뜨겁다. 온라인 카페 회원 중에는 “집 얻기를 원하는 곳으로 이사했다”거나 “당첨 가능성을 높이려고 아이를 가지려고 한다”는 사람도 있다.

○ 정부의 제대로 된 정보 제공 시급


이 같은 현상은 지속적인 전·월세가 상승에 실수요자들이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공공임대에 뛰어든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2012년 5월 이후 올 7월까지 서울 등 수도권 아파트 전세금은 50.2% 올랐다. 이로 인해 수도권 및 5대 광역시(부산 대구 광주 대전 울산) 아파트 5채 가운데 1채의 전세금이 4년 전 매매 가격을 뛰어넘는 현상까지 나타났을 정도다.

정부가 임대주택 자체에 대한 홍보는 열심이지만 입주 자격과 같은 실질적인 정보를 제대로 충분히 제공하지 못해 수요자들끼리 필요한 정보를 알아서 챙기고 있는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강의실에서 만난 일부 수강생도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하려면) 뭘 준비해야 할지 몰라서 왔다”거나 “관련 콜센터에 전화해도 잘 모르는 것 같다”며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문제는 이런 공공임대용 스펙 쌓기가 편법을 조장할 우려가 많다는 점이다. 실제로 오프라인 강의나 온라인 카페에서는 “노인은 당첨 확률이 높고, 돌아가시면 상속도 가능하니 할아버지를 세대주로 내세워라”라거나 “세대원 구성에서 근로소득이 높은 자녀를 빼라” 같은 편법을 소개하는 사례가 적지 않게 눈에 띈다.

손재영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주거난이 심화되면서 청년층을 중심으로 공공임대 거주가 이익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된 듯하다”며 “다만 지금대로라면 정보의 비대칭 때문에 정작 공공임대가 꼭 필요한 계층이 필수 정보를 몰라서 손해를 입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김지은 인턴기자 동국대 경제학과 졸업
#공공임대#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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