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회장이 이끄는 현대그룹이 대주주가 총수 친족들인 회사를 부당 지원한 혐의가 적발돼 현대증권 현대로지스틱스 등 4개 계열사에 공정거래위원회가 시정명령과 함께 12억85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대기업 총수 일가(一家)의 사익 편취와 일감 몰아주기를 징벌하기 위해 마련된 관련법이 처음으로 적용된 사례다.
현대증권은 작년 2월부터 올 3월까지 제록스와 직거래하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데도 굳이 HST를 중간에 끼워 수수료 4억6000만 원을 챙기게 했다. HST는 현 회장의 여동생 지선 씨 부부가 지분 90%를 보유하고 있다. 현대로지스틱스도 2012년 5월부터 3년간 지선 씨 남편 변찬중 씨와 두 아들이 100% 지분을 보유한 쓰리비에 부당하게 56억 원이 넘는 매출 특혜를 제공했다. 핵심 계열사인 현대상선이 좌초 위기인 와중에 현대그룹 총수 일가를 부당 지원하기 위해 비리를 저질렀다니 말문이 막힌다.
4개 계열사 임직원들이 “부당 지원은 우리가 결정한 것”이라고 주장해 총수 일가는 처벌 대상에서 일단 제외됐다. 실무 임직원만 책임지고 ‘도마뱀 꼬리’를 자른 듯한 의혹을 지울 수 없다. 검찰이 철저히 수사해 진상을 가려야 한다. 총수 일가의 친족 회사를 총수 몰래 지원하는 것이 가능한지, 그렇다면 언제부터 이런 과잉충성 풍토가 기업에 만연한 것인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글로벌 해운업계의 판도를 좌우할 해운동맹(얼라이언스) 재편 과정에서 한진해운은 3번째 동맹인 ‘더 얼라이언스’에 합류했지만 현대상선은 배제됐다. 9월까지 추가 협상 기회가 있지만 구조조정과 용선료(傭船料) 협상에 진전이 없으면 현대상선은 불가피하게 난파선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위기에서 총수 일가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논란까지 벌어진다면 천문학적인 세금을 부도덕한 기업에 투입해도 되는지 회의감만 커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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