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이슈]쓱∼ 보고, 휙∼ 버려도… 사장님들 광고효과에 ‘활짝’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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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서 나눠주는 전단지의 세계

3일 서울 중구 명동 거리 한복판에서 두툼한 외투를 입고 모자를 쓴 아르바이트생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다. 전단지 배포 아르바이트생들은 2시간 단위로 시급을 계산해 시간당 1만 원 내외의 돈을 받는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3일 서울 중구 명동 거리 한복판에서 두툼한 외투를 입고 모자를 쓴 아르바이트생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다. 전단지 배포 아르바이트생들은 2시간 단위로 시급을 계산해 시간당 1만 원 내외의 돈을 받는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1월 말 서울 명동 거리. 영하 20도에 가까운 강추위 속에 사람들이 바쁘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행인들 사이에 멈춰 서서 부지런히 손을 내미는 중년 여성들이 눈에 띄었다. 이들의 손에는 어림잡아 100여 장의 전단지가 있었다. 거리 곳곳에는 같은 내용의 전단지들이 버려져 있었다. 전단지에는 명동 골목에 빼곡하게 들어선 식당과 헬스클럽 사진이 화려하게 인쇄돼 있었다.

같은 시각 서울 종로구 청계천 주변에는 전단지를 나눠주는 아르바이트생들의 손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점심때 이곳에서 전단지를 배포하는 아르바이트생은 모두 9명. 헬스장과 요가학원, 음식점, 휴대전화 판매 등 전단지 종류는 명동보다 다양했다.

하지만 추운 날씨 탓인지 손님들의 반응은 별로 좋지 않았다. 수차례 전단지를 건네도 받아 드는 손님은 5명 중 1명꼴. 전단지를 건네면 아무 말 없이 길을 지나는 사람부터 “미안하다”며 거절하는 사람, 안 받을 듯 몸을 비켜가다 마지막 순간에 마지못해 받아 드는 사람 등 각양각색이었다. 전단지를 받아 든 사람 가운데 상당수는 금세 다시 전단지를 버렸다.

직장인 김모 씨(45)는 “전단지를 보고 식당을 가는 경우는 사실 거의 없다. 다만 전단지를 주는 사람이 직접 말을 걸면 지나치기 미안해 받는 경우가 있다”며 “주머니에 전단지를 넣어두면 나중에 보는 때가 있는데 그럴 때나 유심히 보는 편”이라고 말했다.

‘전단지 배포’ 한 우물 파는 사람들


“계란찜은 서비스로 드립니다.”

전단지를 나눠주는 김노담 씨(65·여)의 손길은 쉴 틈이 없었다. 아무 말 없이 전단지를 나눠주던 김 씨는 사람들의 반응이 없자 서비스를 알리는 한 줄 멘트까지 곁들이며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경력이 쌓이면서 생긴 일종의 노하우다. 김 씨는 15년째 명동 등에서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다. 김 씨는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거의 매일 거리에 나선 탓에 요즘 들어 무릎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다리를 절면서 전단지를 나눠주자 사람들이 더 많이 외면하는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김 씨는 집만 지키는 주부가 되기 싫어 전단지 배포 일에 나섰다. 그는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처럼 나도 친구를 따라서 일을 시작했다”며 “어느 순간 용돈 벌이를 넘어서 생활비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면서 일을 멈출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전단지를 직접 나눠주는 나이 든 아르바이트생들의 사연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는 안모 씨(67·여) 역시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 일은 변한 게 없다”고 했다. 안 씨는 1997년부터 20년째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다. 그는 외환위기 이후 남편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거리에 나서기 시작했다고 했다.

안 씨도 김 씨처럼 “처음에는 친구를 따라 거리에 나와서 전단지를 나눠줬는데 창피하고 부끄러울 때가 참 많았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안 씨는 “전단지를 받지 않고 지나치는 행인들, 그리고 손을 내밀고 말을 걸어도 행인이 무시하는 느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다”고 힘든 점을 털어놨다.

이들처럼 경력이 오래된 아르바이트생들은 전단지를 자신의 물건처럼 소중히 다루고 있었다. 떨어진 전단지를 다시 주워 담거나 손으로 직접 흙먼지를 털기도 했다. 이들은 “업주들이 보는 경우가 있어서 함부로 (전단지를) 다뤄서는 안 된다”고 얘기했다. 이들이 장시간 거리에서 일하면서 받는 시급은 최저임금을 제법 웃도는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안 씨는 “보통 2시간 단위로 시급을 산정해 2만2000원 정도를 받는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배포하는 전단지를 미리 결정하는 ‘총량제’ 방식으로 급여를 받았지만 최근에는 2시간 혹은 4시간을 일하고 급여를 산정하는 ‘시간제’ 방식으로 바뀌고 있는 추세다. 안 씨는 “‘총량제’ 시절에는 아르바이트생들이 전단지를 몰래 버리는 경우도 많았지만 시간제로 바뀌면서 일의 효율도 늘어나고 부담도 적어졌다”고 말했다.

길거리에 버려져 수북이 쌓인 전단지. 전단지 배포 아르바이트생들은 2시간 사이 1000장에 가까운 전단지를 나눠주지만 그중 대부분은 길거리에 버려진다. 동아일보DB
길거리에 버려져 수북이 쌓인 전단지. 전단지 배포 아르바이트생들은 2시간 사이 1000장에 가까운 전단지를 나눠주지만 그중 대부분은 길거리에 버려진다. 동아일보DB
경력 따라 배포 실력도 ‘수준 차이’


아르바이트생들을 전단지 배포 업체와 연결해 주는 ‘중매쟁이’도 있다. 과거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에서 비디오 가게를 운영해 일명 ‘비디오 아줌마’로 불리는 한영분 씨(72·여)는 전단지 아르바이트 중개 역할을 해왔다. 한 씨는 “업종마다 위치와 시간에 따라 전단지가 나가는 부수가 현격히 차이가 난다”면서 “연령대와 잘 맞는 업소의 전단지를 소개하는 것이 나의 일”이라고 했다.

그는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소개하면서 철칙이 있다고 강조했다. 한 씨는 “아르바이트생의 끈기를 테스트하기 위해 먼저 헬스장 전단지를 맡긴다”고 했다. 그는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을 배포해야 하는 헬스장 전단지의 특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단지 배포에도 경력에 따라 이른바 ‘레벨’이 있다는 것이다.

한 씨가 얘기한 것처럼 최근 급격히 늘어난 헬스장 전단지는 가장 초짜 아르바이트생들의 몫이다. 전단지 안에 대부분 업체의 정보가 들어있어 부연 설명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마스크를 하거나 가방을 메고 전단지를 나눠주는 경우 열에 아홉은 ‘초짜’라는 게 ‘고참급’ 아르바이트생들의 설명이다.

대형업체가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카페나 식당은 중간 수준이다. 경력 5년 차 미만 아르바이트생이 주로 이들 업체의 홍보 전단지를 배포한다. 업소 설명이 어렵지 않고 업주가 까다롭지도 않기 때문에 노하우가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앞서 소개한 김 씨와 안 씨처럼 10년 이상의 경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지역 대규모 식당이나 입소문 난 소위 ‘맛집’의 전단지를 배포한다. 전단지와 함께 식당 홍보 설명을 적절히 곁들이는 게 이들의 임무다. 이들은 계약서를 따로 작성하지 않더라도 업주와 끈끈한 연대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업종별로 적합한 배포 시간도 있다. 한 씨는 아침 출근 시간과 점심시간, 저녁 퇴근 시간 등 시간대에 따라 배포에 적합한 전단지가 따로 있다고 설명했다. 오전과 점심시간은 헬스장 전단지, 저녁시간은 식당과 술집 전단지의 ‘골든타임’이라는 것이다. 아침에는 헬스장처럼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시작해야 하는 일이, 점심시간과 저녁시간에는 그날 바로 먹을 음식이 잘 먹히는 셈이다.

제작비 천차만별…원스톱 대행업체 등장

“후라이드 1만4000원, 양념 1만5000원. 두 마리 2만 원.”

인쇄기를 통과한 전단지 위로 치킨집 주인이 심혈을 기울여 지은 문구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치킨 그림을 담은 ‘백아트지’가 인쇄기를 통과해 쉴 틈 없이 쏟아져 나온다. 16장의 전단지가 인쇄된 백아트지는 곧바로 절단기를 거쳐 인쇄소 한편에 차곡차곡 쌓인다. 1시간 동안 만들어진 전단지는 4000장. 최대 10만 장까지 인쇄가 가능한 인쇄기 돌아가는 소리가 인쇄소마다 들려온다.

서울 중구 을지로4가 인쇄소 골목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이 골목에만 전단지를 제작하는 인쇄소 10여 곳이 몰려 있다. 전단지 인쇄 의뢰가 크게 늘면서 인쇄 골목은 활기가 넘친다고 한다. 이곳에서 전단지를 제작하는 김성기 씨(48)는 “종이의 질이 그리 중요하지 않은 전단지 인쇄 수요가 크게 늘면서 이곳 인쇄소들이 흥행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디자인과 인쇄는 물론이고 전단지 배포까지 전 과정을 대행해 주는 업체도 들어서고 있다.

디자인과 인쇄를 포함해 전단지 4000장을 제작하는 데 드는 돈은 적게는 1만 원에서 많게는 10만 원으로 천차만별. 전단지를 받아든 행인 가운데 가게를 찾아오는 비율, 즉 고객 유치율을 5%로 가정하면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고객 200명을 유치할 수 있다.

제작 비용은 종이 재질 등에 따라 가격 차이가 크다.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단지의 종류는 크게 세 가지.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일반 ‘백아트지’는 가벼워 대량 배포가 쉬운 장점이 있다. 신문과 함께 오는 광고용 전단지가 바로 이 종이다. 물에 잘 젖지 않는 데다 비교적 저렴한 제작 비용 때문에 업주들이 가장 많이 찾고 있다. 이보다 조금 더 고급스러운 재질의 전단지에는 ‘스노지’가 사용된다. 광택이 없고 비교적 두꺼운 편이다. 거리에서 뿌리는 전단지보다는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을 대상으로 직접 나눠주는 전단지가 주로 이걸로 제작된다.

가장 질이 낮은 모조지를 이용한 전단지도 있다. 일반 복사 용지와 동일한 재질의 이 종이는 제작 비용이 저렴한 반면 물에 잘 젖고 눈에 잘 띄지 않는 단점 때문에 업주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편이다.

무시 못할 전단지 효과


거리에 뿌려지는 전단지가 얼마나 홍보 효과가 있을까. 업주들은 “효과가 있으니 돈을 써가며 뿌리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홍익대 부근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유무궁 씨(45)는 지난해 7월 가게를 연 직후 고민에 빠졌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홍보에 집중할 것이냐 아니면 홍보 전단지를 돌릴 것이냐를 놓고 오랫동안 갈등했다. 대학생 등 젊은층이 주로 찾는 장소임을 감안하면 SNS의 힘을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유 씨는 전단지 홍보를 선택했다. 수많은 음식점이 몰려 있는 홍익대 주변 상권을 감안할 때 바로바로 손님을 잡을 수 있는 홍보 전략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는 전단지의 장점으로 ‘현장에서 갖는 즉흥적인 힘’을 꼽았다. 유 씨는 “전단지가 꾸겨지고 찢어져 길에 버려져 있어도 그것을 보고 가게를 찾는 시민들이 있기 때문에 전단지를 주문하고 배포한다”고 말했다.

명동에서 스파게티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 씨(38)도 2012년 개업 이후 4년여 동안 전단지 홍보를 빼놓지 않고 있다. 김 씨는 “총매출의 10%가 전단지 배포 덕분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일종의 자극제인 전단지가 당장 오늘은 아니어도 내일 손님을 불러올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3일 낮. 서울 종로구 세종로사거리 서대문으로 가는 방향의 인도 위에서 오금옥 씨(66·여)가 이날도 어김없이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점심시간 바쁘게 걸음을 옮기다가도 선뜻 헬스장 전단지를 받아 드는 직장인의 비율이 높았다. 세 명 가운데 한 명꼴로 전단지를 받아 들었다. 오 씨는 “오늘은 잘 받아주는 편”이라고 얘기했다.

앞면엔 ‘우대 쿠폰’이라고 써놓고 뒷면에 헬스장 시설을 보여주는 사진을 넣은 전단지를 유심히 들여다보던 김모 씨(39)는 “어르신들이 고생하시니까 전단지를 받는 경우가 있지만 막상 전단지 때문에 업소를 이용한 적은 별로 없다”고 했다. 이때 한 직장인이 동료에게 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3개월 동안 회비 면제라는데?”

정동연 기자 call@donga.com·최주현 채널A 기자 
#전단지#홍보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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