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당신은, 사랑할 사람이 없어도 살수있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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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아버지,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있어요?” “그렇단다.” 할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왔다. ―자기 앞의 생(에밀 아자르·문학동네·2003년) 》

이 책은 위대한 사랑 이야기다. 프랑스에서 창녀의 아들로 태어난 아랍인 모하메드(그는 ‘모모’라고 불리는 것을 더 좋아했다)는 성매매 여성이 낳은 사생아를 돌보는 유대인 로자 아줌마와 함께 산다. 그녀는 모모에게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부모 이상의 존재였다. 비록 로자 아줌마가 매달 누군가 부쳐주는 돈을 받고 자신을 돌봐주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을 땐 슬펐지만, 상관없었다.

그런 로자 아줌마가 죽어가자 열네 살 모모는 시간을 거꾸로 돌리고 싶어 한다. 어느 날 우연히 영화에 음향을 입히는 녹음실에 들르게 되면서부터였다. 거기서 모모는 음향을 제대로 입히기 위해 몇 번씩이나 필름을 거꾸로 되돌리는 것을 보며 사람의 생도 되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한다.

버려진 이방인 아이 모모는 어린 나이에 삶이 한없이 가혹하다는 사실을 깨달아 버렸다. 로자 아줌마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세계대전을 겪었고,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삶을 꾸역꾸역 견디고 있다. 살기 위해 늘 무언가를 훔쳐야 하고, 애정을 쏟을 대상이라곤 늙은 로자 아줌마와 낡은 우산뿐인 모모 앞에 놓인 생도 마찬가지로 고달프다.

로자 아줌마의 죽음을 앞두고, 자신이 사랑한 여자를 평생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던 하밀 할아버지에게 모모가 다시 물었다. “할아버지, 사람은 사랑할 사람이 없이도 살 수 있나요?” 기억이 희미해진 할아버지는 그 여자의 이름도 잊고 말았다. 하지만 모모는 사랑하면서 살기로 결심한다. 로자 아줌마 대신 우산 아르튀르를 ‘사랑해야 한다’고 되뇐다.

에밀 아자르는 작가 로맹 가리의 가명이다.파릇파릇한 봄, 혹시라도 자신의 삶에 대해 좌절하는 사람이 있다면 억지로라도 애착을 가질 대상을 만들어볼 일이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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