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이천시에 사는 김모 씨(58)는 만성 기관지염을 앓고 있다. 그는 황사로 인해 호흡기 질환에 문제가 생기면 자주 병원을 찾곤 했지만 지난해엔 3번 밖에 병원을 가지 않았다. 지난해 초 다니던 중견기업에서 퇴직한 뒤 ‘적극적인 생활비 절감’ 차원에서 내린 결정이다.
김 씨는 “회사를 다닐 땐 건강관리 차원에서 조금만 몸이 안 좋아도 병원에 갔지만 지난해부터는 기관지염이 아주 심해졌을 때만 병원을 찾았다”며 “퇴직한 뒤 마땅한 수입도 없는 상황에선 돈을 아끼기 위해 병원을 가는 것도 줄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최근 이어지고 있는 경기침체로 김 씨처럼 적극적으로 의료비 지출을 줄이고 있는 사람들이 느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가 16일 발표한 ‘2014년 건강보험 재정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건강보험 재정은 4조5869억 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건강보험 누적 적립금 규모도 12조8072억 원으로 8조2203억 원이었던 4조5869억 원 늘었다.
건강보험 재정이 이처럼 큰 규모의 흑자와 누적 적립금을 기록하게 된 건 주요 질환별 급여비 지출 증가율이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호흡기 질환의 경우 2007~2010년간 연평균 급여비 증가율은 10.7%였지만 2011~2014년 간 연평균 증가율은 1%에 그쳤다. 같은 기간 중 당뇨병과 고혈압의 연평균 급여비 증가율도 각각 10.2%에서 5.6%, 24.5%에서 5.4%로 크게 줄었다.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경제 사정이 안 좋아지면 서민층을 중심으로 평소 같으면 병원에 갔을 증세에도 병원에 가지 않거나, 건강검진 같은 예방 조치를 안 받는 경우가 크게 늘어난다”고 말했다.
충남 지역에서 가정의학과를 운영하고 있는 김모 씨도 “꾸준히 병원을 찾아 관리를 해야 하는 만성질환 환자 중 ‘저렴한 약을 달라’거나 ‘꼭 필요한 검사만 받게 해 달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저소득층과 노년층에서 이런 요구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처럼 불황 때문에 병원 문턱이 높아지는 현상을 막으려면 건강보험 보장률을 더욱 적극적으로 올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3년 말 기준 약 63% 수준에 머물고 있는 건강보험 보장률을 더 끌어올려 한다는 것.
김 교수는 “불황 시기에는 서민들에게 30%대의 본인 부담률은 만만치 않은 부담”이라며 “병원을 가지 못해 병을 키우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중·장기적으로 더욱 큰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복지부 안팎에선 건강보험 재정의 흑자와 누적 적립금 규모가 예상보다 크게 나오면서 건강보험 보장률을 더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앞으로 더 강하게 제기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편 2014년 건강보험 재정현황에 따르면 암 관련 급여비 지출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2007~2010년 간 연평균 증가율이 15.7%였지만 2011~2014년은 3.1%에 그쳤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암 검진율이 상승했고, 복강경 수술 같이 긴 기간의 입원이 필요 없는 시술이 늘어난 데 따른 결과로 분석했다.
반면, 치과 관련 급여비 증가율은 크게 늘어났다. 치과의 경우 최근 5년 사이 급여비 증가율이 연평균 23.4%였는데 틀니, 스케일링, 치아 홈 메우기 등에서 보장성 확대가 이루어진 것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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