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 1, 2위 업체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현재 보유 중인 반도체 관련 모든 특허를 공유하기로 했다. 국내 반도체 업계의 첫 ‘특허 상생모델’로 특허 소송에 따른 불필요한 소모전을 사전에 예방하고 신기술 개발에 기업 역량을 집중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3일 반도체 특허에 대한 포괄적인 특허 크로스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두 회사가 보유한 수만 건의 반도체 특허를 공유하게 된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관련을 포함해 총 10만2995건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고 SK하이닉스도 2만1000여 건의 특허를 갖고 있다. 양사는 이번 계약의 유효 기간 및 라이선스 비용 등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두 회사는 2010년부터 이번 계약을 추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두 회사 간 특허 분쟁이 발생한 적은 없었지만, 두 회사 모두 해외 경쟁사와 잇달아 특허 소송을 벌여오는 과정에서 특허 분쟁의 사전 예방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두 회사는 해외 업체들과 꾸준히 특허 공유 계약을 맺어왔다.
삼성전자는 2010년 미국 메모리반도체 업체인 마이크론테크놀로지와 10년간 특허 크로스 라이선스를 맺었다. 2011년 6월에는 특허 분쟁을 벌여온 미국 반도체 기업 스팬션과도 재발 방지를 위한 특허 공유 계약을 맺었다. SK하이닉스도 지난달 미국 램버스와 포괄적 특허 공유 계약을 맺고 2000년부터 13년여 동안 벌여 온 특허 전쟁을 마무리했다.
업계에서는 특허 크로스 라이선스의 가장 큰 의미가 경영상의 불확실성 및 리스크를 사전에 없애준다는 데 있다고 해석한다. 특허 분쟁에 한번 돌입하게 되면, 소송이 워낙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기 때문에 그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을뿐더러 패소할 경우 물어야 하는 배상금도 제품 판매액에 비례해 산정되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경우가 많다. 또 소송에 휘말리는 즉시 제품 연구와 개발, 판매 등도 위축돼 기업 경영에는 심각한 차질이 빚어진다.
특허 공유를 통해 양사 간 신뢰를 확보해 협력 체계를 강화해나갈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삼성전자는 2011년 IBM과 특허 크로스 라이선스를 체결한 이후 부품과 세트 분야 등에서 광범위하게 협력해왔다. 지난해에는 오스람과 특허소송을 종결하며 크로스 라이선스와 함께 협력을 위한 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두 회사가 손을 잡은 것을 두고 최근 ‘인텔렉추얼벤처스’처럼 특허를 사들인 뒤 그 사용료로 돈을 버는 이른바 ‘특허괴물(Patent Troll)’로 인한 피해가 커지면서 이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특허는 독립적인 것이기 때문에 특허괴물로부터 소송이 제기됐을 때 두 회사가 공동 방어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면서도 “하지만 이번 협약 체결 덕분에 최소한 특허괴물이 삼성전자로부터 사들인 특허로 SK하이닉스를 공격하지는 못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창훈 특허전문 변호사는 “특허 소송이 잦은 스마트폰이나 디스플레이 업계와 달리 반도체 기술은 성숙기에 이르렀기 때문에 이 같은 상생 모델이 가능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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