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카페]번지수 잘못 짚은 새정부 ‘물가와의 전쟁’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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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동 경제부 기자
유재동 경제부 기자
새 정부가 민생 안정을 위한 물가 잡기에 온 힘을 집중하고 있다. 속도와 강도 모두 전례 없는 수준으로 거의 모든 경제 부처가 총동원된 양상이다.

신호탄은 지난달 27일 청와대의 첫 수석비서관회의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가공식품 가격, 공공요금 등이 한꺼번에 오르는 경향이 있다. 물가 안정을 위해 노력을 기울여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자 바로 다음 날인 28일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물가관계부처회의가 소집됐다. 예정에 없던 긴급회의를 준비하느라 담당 공무원들은 밤을 꼬박 새웠다는 후문이다. 회의에서 신제윤 재정부 차관(현 금융위원장 후보자)은 “정권 초의 물가안정이 임기 5년을 좌우한다는 각오로 임해 달라”고 주문했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국세청도 곧바로 움직였다. 담합을 통한 부당한 가격 인상을 제재하고 과도한 이윤은 세금으로 환수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에 상당수 기업이 꼬리를 내리고 일부 식품업체는 가격 인상 계획을 철회했다. 유통업체를 관리하는 지식경제부는 7일 3대 대형마트 임원들을 불러 ‘대책회의’까지 열었다. “지금까지 잘해 왔지만 더 노력해 달라. 추가 인하를 할 수 있는 품목이 더 있는지 찾아 달라”는 요청이 나왔다. 이 모든 일이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지 열흘 안에 벌어졌다.

과거의 많은 정부도 출범 초기 ‘물가와의 전쟁’을 벌였다. 정확히 5년 전인 2008년 2월 27일 이명박 전 대통령은 첫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라면 값이 100원이나 올랐다. 서민들의 타격이 크다”며 물가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후 집중 관리할 50개 생활필수품을 선정했고 공공요금 동결 등의 조치가 이어졌다. 다른 점이 있다면 2008년은 원자재 값 급등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대 후반까지 치솟은 ‘물가 위기상황’이었지만 지금은 1%대 물가가 넉 달째 이어져 오히려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할 국면이라는 점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현재 전체 물가 상승률 수준은 낮지만 가공식품 등 식료품 가격 동향이 심상치 않다. 정권교체기를 틈탄 부당·편승 인상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말한다. 비록 ‘식물 정부’ 상태에 빠져 있어도 물가만은 반드시 챙겨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듯하다.

정국 혼란기에 민심을 추스르는 데 물가 안정만큼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 하지만 최근의 ‘저물가 현상’은 우리 경제의 만성화한 저성장 국면을 보여주는 징조다. 지금 정부가 우선적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는 몇몇 제품의 물가가 아니라 바닥에 떨어진 경제 활력이란 의미다. 정부의 숨 가쁜 대응 때문에 우리 경제의 최우선 과제가 ‘물가 잡기’로 비쳐선 곤란하다는 경제 전문가들의 지적에 새 정부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유재동 경제부 기자 jarrett@donga.com
#물가#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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