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세의 나이에 사업을 시작한 정수원 사장은 기자의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는 28년간 연구원으로 몸담았던 현대중공업을 2000년 그만두고 덕천이라는 선박용 파이프 전문업체를 설립했다. 내 이름을 걸고 제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늦은 창업은 쉽지 않았다. 정 사장은 “경험도 없고, 나이도 많아 걱정이 많았다”며 “사업에 적합한 자질을 갖추기 위해 나 자신을 바꿔 보려고도 많이 노력했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정답은 자신 안에 있었다. 실마리를 준 것은 정 사장의 ‘전문성’이었다. 그는 “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영업력은 좀 부족했을지라도 기술력에 대해서만큼은 확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 사장은 연구직 외에도 부산대 조선해양공학과에서 3년 동안 겸임교수로 활동해 관련 업계에서 신뢰가 높은 편이었다. 그는 “업종을 선택할 때 대부분 ‘얼마나 남는 장사를 할 수 있느냐’를 따지기 쉬운데 그보다는 내가 가장 잘 알고, 잘하는 분야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정 사장의 전문성은 위기 때 빛을 발했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조선업계는 깊은 불황에 빠져들었다. 경제가 악화되자 물동량이 줄었고 자연히 선박에 대한 수요 또한 말라가고 있었다. 선박 제작에 필요한 파이프를 생산하는 덕천도 위기를 피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이 상황에서 정 사장은 자신의 전문성을 십분 활용해 부유(浮游)식 원유저장설비 관련 사업에 진출했다. 바다에서 시추한 원유를 뭍으로 옮기지 않고 해상에 저장하는 데 필요한 녹슬지 않는 파이프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그는 “경제위기에도 원유 시추사업은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갈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힘입어 덕천은 불황 속에서도 연평균 20% 정도의 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다. 2008년 80억 원대였던 연 매출은 지난해 120억 원으로 성장했다. 올해 목표는 150억 원이다. 현재 덕천의 매출에서 부유식 원유저장설비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35% 정도로, 선박용 파이프 사업과 비슷하다.
정 사장은 전문성만큼이나 ‘적절한 시기’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성공신화로 불리던 업체들이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다 무너지는 모습에서 시기의 중요성을 다시 고민하게 됐습니다. 회사의 다음 먹거리로 원자력 관련 사업을 선정했는데 언제 시작해야 할지 끊임없이 그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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