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이진석 기자의 Car in the Film]푸조 ‘랑듀레 184’/ 미드나잇 인 파리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21일 03시 00분


시간 여행 속 시공을 초월해 달리는 차

한불모터스 제공
한불모터스 제공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밤의 파리를 뒤덮습니다. 이 낭만의 거리에 과거를 향해 달리는 차가 멈춰섭니다. 당신은 이 차를 타고 어디로 가겠습니까.

로맨틱 코미디의 거장인 우디 앨런 감독은 신작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에서 당신을 1920년의 ‘황금시대’ 파리로 데려갑니다.

자신도 모르게 환상적인 시간 여행에 말려든 소설가 길(오언 윌슨 분)은 그토록 동경하던 당대의 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스콧 피츠제럴드를 만나게 됩니다. 기행을 일삼는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술친구가 되고 파블로 피카소의 연인 아드리아나(마리옹 코티야르 분)와 로맨스에 빠집니다.

길은 만족할 수 없는 일상을 외면하기 시작합니다. 속물근성이 가득한 약혼녀 이네즈(레이철 매캐덤스)보다 예술을 온몸으로 향유하는 아드리아나, 그리고 문화적 황금기였던 1920년의 파리에 깊이 빠져듭니다. 그는 낭만이 넘치는 과거에 사로잡혀 헤어나질 못합니다. 미화된 기억으로 장식된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 모두일지도 모릅니다.

영화 속 시공을 초월해 달리는 차는 1928년 출시된 프랑스 푸조의 ‘랑듀레 184’입니다. 당시 프랑스를 대표하던 자동차 디자이너 장앙리 라부르데트(1888∼1972)의 작품입니다.

자동차가 부유층의 전유물이던 시대상을 반영한 이 차의 화려한 외관은 눈을 떼기 힘들 만큼 매력적입니다. 라부르데트는 푸조, 시트로엥 등 프랑스 차뿐 아니라 영국 롤스로이스의 역사적 모델인 ‘팬텀 III’도 디자인했습니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이 차의 성능은 그리 뛰어나지 못합니다. 3.8L급 6기통 엔진의 출력은 겨우 80마력, 수동변속기는 4단으로 최고 시속이 115km에 불과했습니다. 최근 출시되는 경차만도 못한 수준이죠. 어쩌면 파리의 ‘낭만 시대’에 질풍같이 빠른 차는 필요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저 아름다움만이 그들의 유일한 가치였을지도요.

“파리는 비가 내릴 때 가장 아름다워.” 길의 말처럼 스크린을 통해 비치는 파리의 거리는 서정적인 영상미를 선사합니다. 최근 파리에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명소를 순회하는 관광코스까지 등장했다고 합니다.

우디 앨런은 과거를 향한 동경에 사로잡힌 관객들에게 별안간 찬물을 끼얹습니다. 길에게 한없이 이상적이던 여인 아드리아나는 1920년보다 더 오래된 르네상스 시대의 파리를 그리워하며 떠나갑니다.

결국 우리의 후손들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를 동경할 것이라는 메시지입니다. ‘지금을 사랑하라’는 마무리는 어쩐지 뒤가 씁쓸합니다. 조금 느릿느릿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낭만이 가득한 과거를 향해 달리는 아름다운 차가 눈앞에 멈춰 선다면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이진석 기자 ge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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