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10일(현지 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2012 CES(가전전시회)’에서 소니 부스를 찾아 TV, 게임기 등 소니의 전략 제품을 살펴봤다. 라스베이거스=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2012 CES’가 열리고 있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 개막일인 10일(현지 시간) 오후 3시. 삼성전자 최고운영책임자(COO) 이재용 사장이 PC마케팅팀장 송성원 전무 한 명만 대동한 채 일본 소니의 전시장에 나타났다. 소니는 삼성전자의 오랜 경쟁 상대이자 파트너이다.
소니는 이번 CES에서 삼성전자와 더불어 가장 큰 규모의 전시장을 준비했다. ‘커넥티비티(연결)’와 ‘네트워크’를 모토로 소니가 강점으로 가지고 있는 음악, 영화 콘텐츠와 게임 등을 소니의 모든 제품과 연결하는 독특한 결합을 내세운 제품과 서비스를 대거 선보였다.
이 사장은 소니의 신형 태블릿PC와 TV, 소니가 독자적으로 처음 내놓은 스마트폰 등 여러 제품을 찬찬히 만져보고 살펴봤다. 특히 ‘FIFA축구’ 게임이 탑재된 신형 게임기는 직접 만져보고 직원의 설명을 5분 가까이 들었다. 수많은 참관자 가운데 이 사장을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였다. 소니 안내 직원도 여느 참관자들처럼 자연스럽게 게임기 기능에 대해 설명했고 이 사장은 기기에 대해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삼성전자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소니를 제치고 글로벌 TV 시장 1위에 오르고, 지난해는 스마트폰 세계 1위에 오르며 하드웨어에선 소니를 제치는 데 성공했다. 1980년대 세계 최대 전자회사였던 소니는 현재는 모바일과 영화, 음악, 게임 등 콘텐츠 중심의 회사로 변신해 있다. 이 사장이 높은 관심을 가진 것은 삼성전자가 비즈니스모델 및 콘텐츠 비즈니스에서는 소니로부터 여전히 배울 점이 많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전날 최지성 부회장이 삼성전자의 신수종 사업으로 ‘콘텐츠 서비스’를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30여 분 소니 전시장을 찬찬히 둘러본 이 사장은 기자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이 사장은 “제품들을 그냥 쭉 둘러봤다”며 “시간 나는 대로 경쟁사 제품들을 봐야 하는데 회의가 많아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게임기를 오랫동안 본 이유가 있냐”는 질문에 “제품을 보니까 패널이 삼성 제품이더군요. 직원한테 물어봤는데 잘 모르는지 소니 패널이라고 답하더라고요”라고 소개했다.
이 사장이 언급한 제품은 ‘플레이스테이션 비타(PS VITA)’. 이 제품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의 공급처를 소니는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삼성전자 계열사인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가 공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시직 안내요원이 알기는 어려운 내용.
소니 전시장을 나온 이 사장은 캐논 전시장을 지나 삼성전자 전시장으로 이동했다. 관람객 수가 소니보다 2배는 많아 보였다. 여유롭게 제품을 볼 수 있었던 소니와 달리 가만히 서서 제품을 보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이 몰렸다. 이 사장으로서는 ‘격세지감’을 느낄 만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이런 전시회에서 삼성전자 임직원들은 관람객과 미디어의 관심이 쏠리는 소니의 부스를 부럽게 바라보던 처지였다. 이 사장은 삼성 매장에서도 삼성이 새로 발표한 ‘시리즈9 노트북’ 등 제품을 안내직원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자세히 살폈다. 이날 오전 전시장을 찾았던 이 사장은 몰려든 취재진 때문에 쫓기듯 자리를 피해야 했기에 제품을 하나하나 세심히 살피지 못했다. 소니는 최근 삼성전자와 합작해 설립한 액정표시장치(LCD) 제조사인 ‘S-LCD’에서 8년 만에 지분을 모두 정리하고 철수했다. 반면 스웨덴 통신회사 에릭손과 합작한 ‘소니-에릭손’에서는 에릭손 지분을 모두 사들였고 이번 CES에서 사명을 ‘소니 모바일커뮤니케이션즈’로 바꿨다고 밝혔다.
소니는 여전히 삼성전자의 주요 고객사이지만 한편으로는 소니가 콘텐츠를 무기로 삼성전자의 스마트폰과 본격적인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스마트폰, 태블릿PC, TV 등 여러 IT기기 라인업으로 구축하는 ‘홈 네트워킹 시스템’도 삼성전자와 소니가 치열하게 경쟁해야 할 분야이다. 최근 삼성전자는 외산업체의 무덤으로 통하는 일본 TV 시장에 다시 진출할 것을 준비하고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삼성전자도 한 방에 훅 갈 수 있다”며 위기를 강조해왔다. 과거 전자산업의 절대 강자였다 지금은 ‘콘텐츠’로 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소니를 한참 동안 살펴보는 이 사장에게서 ‘아버지에 이어 삼성전자의 미래를 찾아야 하는’ 고민을 엿볼 수 있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