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 1조달러’ 외국인들도 큰 공 세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10일 03시 00분


현대重-포항제철에 기술 전수… 현대차 ‘포니’ 디자인정부 훈장받는 3人

“뭐라고요? 찾았다고요? 와! 찾았답니다!”

10월 지식경제부 무역정책과 사무실에는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올여름부터 두 달 넘게 찾아 헤맸던 ‘그’를 드디어 찾았다는 한 통의 전화 때문이었다. ‘그’는 바로 12일 열리는 ‘제48회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 금탑산업훈장을 받을 고(故) 윌리엄 존 덩컨 씨의 유족, 아들 앤드루 덩컨 씨였다.

지경부는 이달로 예상됐던 한국 무역규모(수출+수입) 1조 달러 달성을 기념해 올여름부터 수개월 동안 국내 무역 발전에 기여한 유공자를 뽑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12일 열리는 기념식에서는 총 31명의 유공자가 표창을 받을 예정이다. 이 가운데에는 영국인 윌리엄 존 덩컨 씨를 비롯해 일본인 고 아리가 도시히코 씨(有賀敏彦·동탑산업훈장), 그리고 이탈리아인 조르제토 주자로 씨(철탑산업훈장) 등 외국인도 3명 포함돼 있다. 이들은 각각 우리나라 무역 초창기 조선, 제철, 자동차 산업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인물이다.
▼ 금탑훈장 英 덩컨 씨 무명 현대重에 10척 발주… “배는 한국에 물어봐라” ▼

○ 한국 조선의 미래를 믿어준 덩컨 씨

이번 기념식에서 최고의 영예인 금탑산업훈장을 받는 덩컨 씨는 한국 정부가 그에게 상을 전달하기 위해 영국 경찰청에까지 협조요청을 했을 정도로 공을 들였다. 한국 조선업과 현대중공업 발전에 큰 도움을 준 덩컨 씨는 1981년 위암으로 숨졌다. 그 후 유족의 행방이 묘연해 지경부와 외교통상부, 현대중공업 유럽지사까지 모두 나선 끝에 유족을 찾았다. 현지 경찰에 조회 요청은 물론이고 지역 신문에 기사와 광고까지 낸 끝에 얻은 성과였다.

스코틀랜드 출신인 덩컨 씨는 한국 조선업의 태동기였던 1970년대, 중동의 선박회사 UASC(United Arab Shipping Company)의 기술수석 책임자로 한국에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UASC는 현대중공업에 화물선 10척을 발주한 상태였는데, 그 진행 과정을 확인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1975년 봄, 그를 맞으러 부산공항에 나가 있던 현대중공업 관계자들은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그는 당시 세계 조선해운업의 중심지였던 영국에서 영향력이 막강했던 인물로 선박의 계약뿐 아니라 배의 건조 기술과정에서 절대적 결정권을 갖고 있었다.

그 자리에 마중을 나갔던 황성혁 당시 현대중공업 영업총괄자는 “‘술도, 여자도, 돈도 좋아하지 않는다. 일만 열심히 한다’는 게 일본 조선업계에 난 그의 평판이었다”며 “특히 동양인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 걱정이 많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막상 한국에 온 그는 한옥과 한식을 매우 좋아했다. 황 씨는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일본을 싫어하고 한국인의 솔직함을 좋아하는 친구였다”고 말했다.

그런 그이지만 현대중공업 생산부서 사람들에게는 항상 완벽을 요구해 ‘악질’로 통했다. 그의 ‘지독한 기술지도’는 현대중공업의 기술력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황 씨는 “그는 한 시간 전까지도 현장 직원들과 목소리를 높여가며 싸우고서도 밖에 나가 외국인들을 만나면 ‘이 친구들(현대중공업)은 영국이 100년 동안 한 일을 3∼4년에 해낸 친구들이야. 이제 세계 조선업은 이 친구들에게 물어보고 해야 해’라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현대중공업이 세계 선박수주 국제입찰 시장에서 이름을 날리는 데도 큰 기여를 했다. 1981년 1월, 중동에서는 컨테이너선 네 척의 국제입찰이 열렸는데 이는 앞으로 발주될 거대한 프로젝트의 시작이기도 했다.

이 입찰 경쟁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조선소는 현대중공업과 일본의 IHI조선소. 당시 발주사 임원들의 마음은 일본 쪽으로 넘어가 있었지만 덩컨 씨는 현대중공업을 밀었다. 관건은 수주단가였는데 협상 관계자였던 덩컨 씨는 현대중공업 측에 일본이 제시한 최종 수주가격에 대한 힌트를 줬다. 그는 호텔 레스토랑에서 만난 현대중공업 협상팀에 ‘12.1’이라는 숫자가 적힌 냅킨을 떨어뜨렸다. 1210만 달러라는 뜻이었다. 그날 밤 네 척의 컨테이너선은 현대중공업의 품에 안겼다. 지경부는 “한국 조선업에 대한 그의 믿음과 기술지도는 한국이 세계 1위 조선업 국가가 되는 초석이 됐다”고 말했다. 12일 열리는 기념식에서는 그의 아들 앤드루 덩컨 씨가 상을 받는다.

○ 국내 제철산업 첫 돌 놓은 아리가 씨

12일 기념식에서 동탑산업훈장을 받게 될 외국인은 2007년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일본인 아리가 도시히코 씨다. 그는 신일본제철 감사역으로 한국에 와 1967년 출발한 포항제철(현 포스코)의 시작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당시 한국은 최초의 종합제철소 건설을 목표로 야심 차게 첫 삽을 떴지만, 업계 관계자 그 누구도 제철소는커녕 쇳물을 녹이는 고로조차 제대로 본 적이 없는 상황이었다. 외국의 선진기술을 전수받는 것이 급선무인 그때, 일본으로의 견학과 연수를 소개해준 이가 바로 아리가 씨였다. 그는 한국 정부가 일본에 제철소 건설을 위한 컨설팅을 요청했을 때도, 목욕탕 한 곳 제대로 없던 시골 포항에 3년이나 머물며 포항제철 1기 건설의 기술지도를 적극적으로 수행했다. 신일본제철 본사에서 ‘기술 전수를 지나치게 열심히 하는 것 아니냐’고 질책을 받았을 정도였다.

지경부는 “일본 측에 ‘한국의 일관제철소 프로젝트는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설득해 양국 정부가 자금조달 협정을 맺을 수 있게 한 것도 아리가 씨였다”며 “이런 그를 대신해 부인 아리가 후미코 여사가 12일 기념식에서 상을 받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 포니를 디자인한 주자로 씨


철탑산업훈장을 수상하는 외국인은 세계적 디자이너인 조르제토 주자로 ‘이탈디자인 주자로’ 대표다. 그는 한국 자동차의 고유 모델이자, 최초로 해외에 수출된 현대자동차 ‘포니’를 디자인했다.

현대자동차가 포니를 개발하던 1973년 당시 그는 자동차 산업계에서 ‘스타일링의 귀재’로 불렸다. 폴크스바겐의 ‘골프’와 ‘파사트’, 일본 ‘이스즈’ 차도 그의 작품이었다. 그가 디자인한 포니는 1976년 에콰도르에 5대가 수출된 것을 시작으로 1982년 포니2가 나오기 전까지 9만2000대의 수출을 기록하면서 한국 자동차 산업이 세계적 수준으로 발돋움하는 토대가 됐다. 주자로 씨는 그 뒤로도 마티즈, 렉스턴, 쏘나타, 매그너스 등 국내 차를 디자인하며 한국 차의 수준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경부는 “최근 그가 디자인한 코란도C는 6월부터 매달 3000대 이상의 수출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며 “12일 시상식에서 직접 참석한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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