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관료들 ‘변양호 신드롬’ 어찌할꼬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16일 03시 00분


코멘트

■ 론스타에 외환은행 매각명령 앞두고 몸 사리기 극심

‘법대로, 절차대로 처리하라는데 나중에 청문회라도 열리면 누가 지켜줄 건가?’

외환은행 대주주인 론스타에 대해 외환은행 지분 매각명령을 내려야 할 금융위원회 관료들 사이에 ‘변양호 신드롬’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외환은행 노조와 일부 좌파 성향의 시민단체들이 외환은행 지분을 주식시장에 내다파는 ‘징벌적 매각명령’을 내리라고 주장하는 가운데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까지 “경영권 프리미엄을 막아야 한다”고 발언하면서 관료들의 몸 사리기가 극에 달한 상태다.

○ 겉은 담담, 속은 복잡한 금융위


금융위는 겉으로는 담담하다. 지난달 외환카드 주가 조작으로 유죄가 확정된 론스타에 대해 대주주 적격성 충족명령 사전통보와 충족명령, 지분 강제매각명령 사전통보 등의 절차를 속전속결로 진행했고 강제매각명령도 곧 내리겠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다. 16일 금융위 정례회의가 열리지만 법리 검토에 시간이 좀 더 필요해 강제매각명령 관련 사안을 다룰지는 불투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담담한 표정과는 달리 내부적으로는 김석동 금융위원장과 실무진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는 관측이 많다. 김 위원장은 법리에 따라 ‘조건 없는’ 매각명령을 내리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보지만 이런 결정의 근거가 되는 법 규정들을 검토하는 실무진은 자신들의 ‘앞날’을 더 걱정하고 있다. 금융위의 한 관료는 “위원장과 달리 밑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은 오랜 기간 공직생활을 더 해야 하는데,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법과 원칙’을 앞세워 결정하면 후폭풍을 맞을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현재 김 위원장은 “실무진이 검토한 보고서를 제출하면 금융위 회의에서 결론짓겠다”는 뜻을 실무 국장, 과장, 사무관들에게 전한 상태다. 위원장 개인의 뜻이 아닌 법적 검토 결과를 토대로 ‘담백한’ 결론을 내리겠다는 것이다.

○ 금융위, 외부에도 자문해


공을 넘겨받은 실무진은 고민에 빠졌다. 속으로는 외환은행 노조가 ‘론스타에 대한 비금융주력자 심사를 하지 않는 것이 헌법 위반’이라는 내용의 위헌소송 결론이 나올 때까지 결정을 미루고 싶지만 그러기엔 사안이 시급하고 김 위원장의 ‘절차대로 빨리 처리하겠다’는 의지도 확고하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내부 법무팀을 통한 법리 검토를 마쳤을 뿐 아니라 외부 법률전문가들에게까지 구두로 조언을 구했다.

금융회사의 법무 담당자들은 “법리 검토를 하면 ‘조건 없는 매각’ 외에 다른 방안을 생각할 수 없지만 정치적 변수 때문에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우선 은행법에는 한도를 초과해 지분을 보유한 대주주에게 대주주 자격을 박탈하려는 취지로 처분을 명령하도록 했을 뿐 매각방식을 제한할 근거가 없다. 다만 조건 없는 매각명령을 내렸는데, 론스타가 시간을 끈다면 추가 조치로 장내 매각을 권고할 수는 있다는 것.

또 조건 없는 강제매각명령이 경영권 프리미엄을 보장해 주는 셈이어서 대주주 자격을 박탈하는 실익을 얻을 수 없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도 A금융회사 법무담당 변호사는 “론스타가 지분을 취득해 대주주가 된 시점에 이미 경영권 프리미엄이 포함된 가격을 치렀고, 이 가격에는 나중에 생길 가능성이 있는 프리미엄까지도 반영돼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금융계는 정치권이 표를 의식한 나머지 객관적인 법률 검토 없이 일단 던져놓고 보는 식의 발언 행태에 강한 반감을 보이고 있다. 은행의 한 임원은 “외환은행 주식을 장내 매각할 경우 주가가 떨어져 소액주주가 피해를 보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며 “공무원이나 정치권 모두 이성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 변양호 신드롬 ::


2003년 외환은행의 론스타 매각에 주도적 역할을 한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이 외환은행 헐값 매각 혐의로 기소된 뒤 공무원들이 논란이 되는 사안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결정을 미루는 경향을 지칭하는 용어.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