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S 폭탄? 폭락장에선 손실 눈덩이… 24조 몰려 ‘제2 키코’ 우려

  • 동아일보

회사원 김모 씨(34)는 주가연계증권(ELS) 상품만 생각하면 한숨부터 나온다. 기초자산 주가가 기준가보다 50% 넘게 떨어지지만 않으면 수익이 생기니 원금을 손해 볼 확률이 제로나 마찬가지라는 프라이빗뱅커(PB)의 권유에 덜컥 가입한 게 화근이었다. 20%대의 높은 수익률을 챙길 수 있겠다는 김 씨의 기대는 8월 이후 찾아온 폭락장에 물거품이 됐다. 기초 종목 주가가 기준가의 50% 아래로 추락하고 만 것. 만기까지 기준가를 회복하지 못하면 꼼짝없이 원금을 하락폭만큼 날릴 형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중소기업의 대량 도산을 초래했던 통화옵션상품 ‘키코(KIKO)’의 공포가 증시에서 발생할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개별 주식의 가격이나 주가지수의 움직임에 따라 수익이 결정되는 ELS 시장에 무려 24조 원 넘는 자금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 ‘위험한 풍선’ ELS 시장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한때 움츠러들었던 ELS 시장은 주가 상승을 타고 또다시 부풀어 올랐다. 올해 상반기 ELS 발행금액은 19조7522억 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보였다. 전체 잔액도 8월 말 기준 원금보장형 7조741억 원, 원금비보장형 17조8517억 원 등 총 24조9258억 원으로 금융위기 이전 수준에 버금간다. 2010년 8월 말 17조6123억 원에서 41.5%나 껑충 뛰어 1000조 원 안팎인 코스피 시가총액의 2.5%를 차지하고 있다. ELS 시장의 덩치가 커진 것은 금융위기 이후 주가가 상승세를 타면서 발행 여건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코스피가 2,000 선을 넘나들던 올 상반기 ELS 월 발행금액은 3조 원 선을 오르내렸다.

문제는 ELS가 투자자들의 자금이 24조 원이나 몰릴 만큼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원금비보장형 ELS는 보통 주가가 일정 범위 안에 있으면 10∼20%대의 수익을 얻지만 이 범위를 벗어나면 기초자산의 주가 하락폭만큼 원금 손실이 난다. 일정 범위만 벗어나면 손실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구조인 것. 한 전문가는 “증권사들이 판매할 때 주가가 기준가의 50% 밑으로 떨어질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강조해 멋모르고 가입하는 사례가 많다”며 “ELS는 주가가 하락하지 않는 데 베팅하지만 주가가 크게 떨어지면 손실을 보는 ‘미들 리스크’ 상품”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수익률은 10∼20%로 고정돼 있지만 주가가 사전에 정해진 범위를 벗어나면 손실률에는 제한이 없는 ‘비대칭성’도 지니고 있다. 이 때문에 선물옵션 전문가들은 손실위험 대비 이익이 너무 적은 ‘악마의 상품’이란 주장까지 나온다. 한 증권사의 고위 관계자는 “이런 비대칭성과 증권사의 운용능력 등을 고려하면 모든 ELS가 최소 20% 이상의 수익은 줘야 한다”고 꼬집었다.

○ ‘모르쇠’ 투자는 ‘키코 폭탄’ 될 수도


이번 폭락장에서 개별종목을 활용한 상당수 ELS 상품은 이미 원금 손실 구간에 들어갔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8월부터 코스피가 500포인트가량 폭락하면서 원금손실 한계선(녹인 배리어·Knock-in barrier)에 도달한 ELS 잔액이 2조 원 수준으로 급증했다”고 밝혔다. 만기일까지 기초자산의 주가가 증권사와 투자자가 사전에 약속한 수준으로 회복하지 못하면 대규모 원금 손실이 불가피하다.

전문가들은 은행보다 높은 수익률에 이끌려 섣부르게 ELS 투자를 결정하기보다는 기초자산 종목의 등락 추이와 자신의 투자성향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권오경 국민은행 이촌PB센터 팀장은 “잠재적인 불안요소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면 언제든지 지수는 극단적으로 추락할 수 있는 만큼 ELS라 하더라도 손실 가능성을 충분히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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