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일과 삶]오쿠야마 신지 한국P&G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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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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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째 ‘하이쿠’로 육아일기… 가정 충실해야 소비자 소통”

오쿠야마 신지 한국P&G 사장은 여덟 살 된 아들과의 일상을 일본의 짧은 시 하이쿠로 쓸 정도로 아들 사랑이 각별하다. 오쿠야마 사장은 “가족의 든든한 지원이 있어야 비즈니스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며 “P&G가 구성원들의 일과 가정의 조화를 중시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오쿠야마 신지 한국P&G 사장은 여덟 살 된 아들과의 일상을 일본의 짧은 시 하이쿠로 쓸 정도로 아들 사랑이 각별하다. 오쿠야마 사장은 “가족의 든든한 지원이 있어야 비즈니스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며 “P&G가 구성원들의 일과 가정의 조화를 중시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하늘에 차오른 달, 허리를 굽혀 잘자요 인사한다.’

오쿠야마 신지(奧山眞司) 한국P&G 사장(46)이 최근 아들(8)과 잠자리 준비를 하다 있었던 일을 담은 하이쿠(俳句·일본 고유의 단시)다. 오쿠야마 사장은 2003년 아들이 태어날 때부터 하이쿠를 쓰기 시작했다. 보통 17자 안팎으로 글자 수를 제한하는 하이쿠는 극도로 축약된 시이지만 암시적인 시 속에서 느껴지는 해학미는 읽는 이의 무릎을 치게 한다. 그는 “아내와 함께 아들에 대한 육아일기를 쓰기로 했는데 매일매일 일기를 쓰는 게 쉽지 않은 일과였다”며 “하이쿠로 아들과의 추억을 기록해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에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 가족은 성공의 원동력

11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국P&G 본사 사무실에서 만난 오쿠야마 사장은 기자에게 두꺼운 공책 네댓 권을 펼쳐보였다. 쪽당 일주일을 기록해 나간 공책에는 아들과 보내온 8년간의 순간순간이 하이쿠에 담겨 있었다. 오쿠야마 사장이 회사일로 바쁜 주중에는 아내가 아들과의 일상을 일기로 쓰고 주말에는 그가 하이쿠로 바통을 이어받는다. 그렇게 쓰기 시작한 일기가 벌써 20여 권이다. 오쿠야마 사장은 “아무리 피곤해도 하이쿠 쓰는 것을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었다”며 “주말만큼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그 시간을 하이쿠로 기록한다”고 말했다.

한국P&G는 일과 가정의 조화를 가장 큰 원칙으로 여긴다. 모든 기업이 가족과의 시간을 포기하고 일을 하라고 강요하지는 않지만 회사일로 가족에 소홀한 가장의 모습은 당연시되는 것이 한국 사회다. 한국P&G는 기업의 존속을 위해 일과 가정의 조화를 구성원들에게 ‘강요’한다. 오쿠야마 사장은 “P&G는 생활용품은 물론이고 화장품 식품에 이르기까지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소비재 회사”라며 “다양한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읽는 것은 바로 자신의 가정에서부터 시작되는 만큼 회사가 구성원들의 가정을 중시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학 취업설명회 때 자신의 가족사진과 아들과의 추억이 담긴 하이쿠를 소개하는 것으로 회사 설명을 시작한다. 일과 가정의 조화라는 P&G의 경영철학을 알리기 위해서다.

한국P&G는 누구든지 원하면 일주일에 하루는 재택근무를 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정해진 업무시간만 지키면 된다. 집에서 일하는 것이 과연 기업의 입장에서도 효율적일까. 오쿠야마 사장은 “직원들이 업무공간을 집으로 바꿔 잠시나마 활기를 되찾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이라며 “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는 어쩔 수 없지만 직원들이 그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 고민한다”고 말했다. 한국P&G의 이직률은 한 자릿수 미만으로 국내 진출한 외국계 기업 가운데에서도 낮은 수준이다.

○ 열린 P&G, 닫힌 P&G

오쿠야마 사장에게는 이렇다 할 집무실이 없다. 일반 직원들과 칸막이 하나 없이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할 뿐이다. ‘오픈 앤드 고(Open and Go)’라고 불리는 이 공간 활용방식은 ‘열린 소통’을 위한 것이다. 열린 소통을 위한 P&G의 노력은 단순히 공간뿐이 아니다. 사장 부장 과장이라는 호칭 대신 ‘○○○님’이라고 부르거나 영어 이름을 부른다. 한국P&G 관계자는 “CJ그룹에서 먼저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 한국P&G가 처음 도입했다”고 덧붙였다.

한국P&G의 남녀 비율은 5 대 5 수준이다. 국내 기업에 비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수다. 성별뿐 아니라 오쿠야마 사장이 대표로 부임한 3, 4년 새 직원들의 국적도 다양해졌다. 오쿠야마 사장은 “소비자들은 정말 한 명 한 명이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며 “다양한 소비자의 마음을 읽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다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P&G는 글로벌 인사조직컨설팅회사인 휴잇으로부터 ‘다양성과 포용이 강한 기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열린 P&G라 하지만 P&G는 외부에서 영입된 임원이 없다. 철저히 신입사원 때부터 공채로 채용한다. 순혈주의일까. 오쿠야마 사장은 “우리가 원하는 리더상은 카리스마 넘치는 1명의 리더가 아니라 리더가 회사를 떠났을 때에도 회사가 흔들리지 않는 것”이라며 “그런 리더십은 말단사원시절부터 키워져야 하기 때문에 P&G 유전자(DNA)를 고수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2008년 한국대표로 부임한 그는 마케터 출신이다. P&G 출신 마케터들은 국내 기업들의 영입 1순위일 만큼 P&G는 마케팅사관학교로 명성이 높다. 마케터에게 가장 중요한 경쟁력은 무엇일까. 오쿠야마 사장은 “소통의 기술”이라고 말한다. 그는 “하이쿠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노출하는 대신 제한된 글자로 팩트(fact·사실)만을 전달하기 때문에 현상을 관찰하고 이를 정확히 전달해야 하는 마케터에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 오쿠야마 신지 대표는


―1989년 일본 와세다대 영문학과 졸업, P&G 입사
―1997년 주방세제 및 섬유유연제 브랜드 마케팅 상무
―2000년 동북아 소비자마케팅 개발팀 상무
―2001년 동북아 여성용품 마케팅 상무
―2002년 동북아 여성용품 사업부 사장
―2005년 동북아 여성용품 및 구강용품 사업부 사장
―2006년 동북아 질레트 사업부 사장 및 P&G 본사 부사장
―2008∼현재 한국P&G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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