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6월 이건희 삼성 회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인재와 기술, 인류사회 공헌 등을 강조하는 ‘신경영 선언’을 발표했다. 이후 삼성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오늘에 이르렀다. 기업이 성장하고 지속하는 데는 이처럼 기업의 경영철학이나 핵심가치를 뚜렷이 하고 공유하는 것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기업 가운데서도 재계 순위 상위 기업은 ‘인간’이나 ‘인류’를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시야를 국내에 한정하지 않고 전 세계로 돌리겠다는 의미. 대표적인 기업이 삼성이다. 삼성은 ‘인재와 기술을 바탕으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여 인류사회에 공헌한다’를 경영이념으로 하고 있다. 이 이념을 바탕으로 설정한 핵심가치가 인재제일, 최고지향, 변화선도, 정도경영, 상생추구라는 핵심 가치다.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는 현대자동차도 3월 ‘창의적 사고와 끝없는 도전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창조함으로써 인류사회의 꿈을 실현한다’는 내용의 경영철학을 발표하는 등 인류사회를 강조하고 있다.
특히 현대차그룹 외에도 현대중공업그룹, 현대백화점그룹 등 범현대가(家)는 경영철학이나 경영이념과는 별도로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강조했던 근면, 검소, 친애를 사훈(社訓)으로 여기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소비자를 직접 상대하며 서비스를 제공하는 유통기업의 경우 경영철학에서부터 고객을 강조하는 모습이다. 홈플러스는 ‘고객에게 더 높은 가치 제공’이 사명(社命)이며, 현대백화점도 ‘고객에게 가장 신뢰받는 기업’이 기업 비전이다. 신세계도 경영이념에 ‘고객과 함께 성과와 가치를 나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웅진그룹의 경영정신은 주요 그룹 가운데 가장 독특하다. 2003년 공식 선포한 ‘또또사랑’이 그것이다. 또또사랑은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또또 사랑한다’는 윤석금 회장의 경영철학을 짧게 줄인 표현이다. 웅진그룹 관계자는 “1990년대 한 신입사원이 회장에게 경영정신을 묻자 윤 회장이 즉석에서 ‘또 사랑이다’라고 답했고, 그 이듬해에는 다른 신입사원에게 ‘또또사랑’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며 “이것이 이어져 내려오다 2003년 공식화됐다”고 설명했다.
육상 해상 항공 등 수송 관련 분야의 전문기업인 한진그룹은 창업주인 조중훈 회장 때부터 ‘수송보국’을 회사의 경영이념으로 삼고 있다. 수송을 통해 나라에 보답한다는 의미. KT와 포스코 등 과거 공기업이었던 기업들은 이념이나 철학, 가치보다는 경영체제 자체에 대해 강조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KT는 역발상을 강조한 ‘올레 경영’, 포스코는 정준양 회장이 평소 강조하는 ‘열린 경영’이 기업의 핵심가치로 돼 있다.
한편 두산그룹의 경우 1993년 발표한 경영이념이 있지만 현재는 사실상 사장된 상태이며 재정립 중이다. 그룹 매출의 반 이상이 해외에서 발생하는 데다 외국인 직원도 계속 늘어나는 상황이어서 경영이념을 현 시점에 맞게 수정해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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