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는 올해 4월 단시간 근로 희망자를 모집했다. 하루 8시간 근무를 4시간으로 줄여 개인적인 일에 시간을 더 쓰도록 해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신청자는 아무도 없었다. 줄어드는 근무시간에 비례해 임금도 감소하는 게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한국마사회도 같은 시기 단시간 근로를 포함해 다양한 근로방법을 신청하라고 알렸다. 그러자 5명이 탄력근무제를 신청했다. 이들은 남들보다 1시간 늦은 오후 10시에 출근해 오후 7시에 퇴근했다. 하지만 집에서 일하는 재택근무제, 사무실이 아닌 곳에서 근무하는 원격근무제, 단시간 근로제 등을 신청한 직원은 없었다.
정부가 4∼9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한전 등 11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시범 실시한 유연근무제 성과가 극히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유연근무제는 육아, 가사 등으로 하루 8시간을 근무하기 어려운 직원들이 형편에 맞게 일할 수 있도록 시간과 장소를 조정하는 제도다. 올해 7월 ‘스마트워크 활성화 전략’ 보고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스마트워크 제도 도입은 대혁명적 변화다. 정부도 대혁신하라”고 지시하면서 유연근무제는 더욱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본보가 유연근무제를 시범 실시한 11개 공공기관에 확인한 결과 전체 직원 3만8621명 중 유연근무제를 실시한 직원은 281명에 그쳤다. 신청자 비율은 100명 중 1명꼴도 되지 않는 0.73%에 불과했다.
특히 정부가 기대를 걸었던 단시간 근로제를 신청한 사람은 고작 8명뿐이었다. 정부는 단시간 근로제를 통해 맞벌이 부부의 고민을 해결하고 단축된 근무시간만큼 신규 직원을 채용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이에 대해 한 공공기관의 인사담당자는 “육아휴직제도가 워낙 잘돼 있어 단시간 근로를 희망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일부 공공기관은 단시간 근무하는 비정규직 사원을 별도로 뽑기도 했다. LH는 만 60세 이상을 대상으로 단시간 근무용 비정규직 2000명을 뽑았고 한전도 227명을 고용했다. 정부가 인력을 늘릴 때 단시간 근로에 적합한 직무에는 단시간 근로자를 우선 채용하도록 독려한 영향이 컸다. 하지만 단시간 근무용 비정규직은 유연근무제 취지에 맞지 않아 임시방편으로 일자리를 늘리는 수단이라는 지적이 많다. 한전이 고용한 227명은 주로 전신주에 붙은 전단을 떼어내는 일을 했다. 이는 기존 직원들이 할 업무이다.
출퇴근 시간을 조절하는 탄력근무제는 그나마 활용도가 높았다. 공무원연금공단은 직원 510명 중 71명이 탄력근무를 했고 한국전파진흥원도 393명 중 41명이 탄력근무를 수행했다.
단시간 근로제와 탄력근무제를 제외한 나머지 유연근무제는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특히 민간기업에서 ‘스마트워킹’의 하나로 실시하는 재택근무나 원격근무를 적용하는 공공기관은 한 곳도 없었다.
2007년부터 모든 영업직 사원들이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삼성토탈의 유석렬 사장은 “재택근무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키려면 노트북과 스마트폰 등 인프라를 갖추고 업무의 정의를 명확히 해 재택근무에 적합한 일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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