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기자의 That’s IT]선택 과잉시대 살아가기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5월 19일 03시 00분


아이의 돌 사진만큼은 제 손으로 직접 찍고 싶었습니다. 직접 찍으면 전문 사진가가 찍는 것보다는 어색해도 ‘제가 본 아이의 표정’은 살릴 수 있을 것 같아서였죠. 그래서 일정 시간 스튜디오와 조명만 빌리는 ‘셀프 스튜디오’라는 곳을 찾아 인터넷을 뒤졌습니다.

막막했습니다. 스튜디오는 너무 많고, 가격과 조건은 다 비슷하고, 먼저 임대해 본 사람들의 평가는 극과 극을 오갔습니다. 결국 사진을 찍을 저는 선택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사진 촬영을 공부해 본 적이 없는 아내에게 스튜디오 선택을 맡겼습니다.

‘잼 실험’이란 게 있습니다.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시나 아옌거 교수는 이 실험에서 복숭아잼, 딸기잼, 사과잼 등 수많은 잼을 왼쪽 판매대에 6종류, 오른쪽 판매대에 24종류씩 각각 늘어놓고 소비자의 반응을 살핍니다. 일반적인 통념으로 보면 소비자들은 네 배나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오른쪽 판매대에서 원하는 잼을 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통념은 틀렸습니다. 24종류의 잼이 놓인 선반 앞에 선 소비자 가운데 단 3%만 잼을 샀습니다. 반면 6종류의 잼이 있는 선반에서는 30%가 잼을 샀죠. 너무 많은 선택은 구매를 방해했던 겁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더 많은 선택의 가능성이 반드시 좋은 건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기업들도 이런 소비자의 깨달음을 공략합니다. 예를 들어 애플 같은 회사는 ‘아이폰’을 5000만 대 이상 팔았는데 아이폰의 종류는 색상(검은색, 흰색)과 용량(16GB·기가바이트, 32GB)에 따라 단 네 종류뿐입니다. 수많은 커피를 판매하는 스타벅스도 계절에 따라 ‘프로모션 음료’를 두세 가지 만드는데 수십 종류의 커피 메뉴를 보는 대신 두세 가지 프로모션 음료로 선택의 폭을 좁힐 수 있습니다. 한때 국내 통신사의 통신요금제는 최악의 선택 메뉴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조차도 최근에는 복잡한 요금 상품의 가짓수를 줄이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어느새 기업의 마케팅 전략의 노예로 전락한 것만 같습니다. ‘상품평’과 ‘별점’이 지배하는 인터넷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제 의지로 내리는 자유로운 선택은 점점 줄어든다는 느낌도 듭니다.

최근 저와 같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책이 나왔습니다. ‘잼 실험’을 했던 아옌거 교수의 ‘선택의 예술’이란 책입니다. 이 책에서 아옌거 교수는 프랑스의 작가 알베르 카뮈를 이용해 “바위를 끊임없이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는 무의미한 일을 하는 듯 보이지만 계속 그 일에 도전한다는 사실 자체가 위대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정보의 홍수 속에서 무의미해 보이는 선택을 할지라도 우리의 의지를 그 선택에 담아 의미를 부여한다면 그 자체가 의미 있는 행동이란 것이죠. 조금 위로받았습니다.

참, 돌 사진 촬영은 잘 마쳤습니다. 만족스러웠습니다. 아내의 선택이 역시 옳았습니다. 아내는 ‘조명 장비의 종류’와 ‘스튜디오의 넓이’ 등 다양한 정보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몇 개의 댓글을 보고 선택했답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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