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돈 그냥 버는게 아니구나 깨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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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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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범 STX 중공업-에너지 총괄회장의 ‘기업생활 1년’장관-무협회장 거쳐 CEO로“甲에서 乙로… 괄시 많이 받아그래도 수주하려면 참아야”

산업자원부 장관과 한국무역협회장을 지낸 이희범 회장이 지난해 3월 26일 STX그룹으로 옮기자 관가(官街)와 재계에서는 적잖은 화제가 됐다. 장관을 지낸 고위 관료가 민간 기업으로 가는 사례가 드문 데다 고문이나 부회장이 아닌 ‘회장’으로 가는 것도 이례적이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민계식 현대중공업 부회장이 회장으로 승진하기 전까지 이 회장은 오너가 있는 주요 대기업에서 유일한 비(非)오너가(家) 출신 회장이었다.

이례적인 행보라는 평가 속에 STX그룹으로 옮긴 지 1년 남짓 된 이 회장을 13일 서울 중구 STX그룹 사옥 15층 접견실에서 만났다. 1년 사이에 기존 STX그룹 에너지부문 총괄회장에서 지금은 중공업·에너지 총괄회장으로 활동 영역이 더 넓어졌다.

○ ‘괄시 많이 받지만…’


이희범 STX그룹 회장은 “정부에서 일하다 민간기업으로 와서 기업들이 그냥 돈을 버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내가 몸담고 있는 기업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이희범 STX그룹 회장은 “정부에서 일하다 민간기업으로 와서 기업들이 그냥 돈을 버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내가 몸담고 있는 기업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기업으로 와서 괄시 많이 받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내가 전직 장관인데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기업들이 돈을 그냥 버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합니다.”

이 회장은 소탈하고 솔직한 화법으로 민간 기업에서 보낸 1년의 소회를 털어놓았다. ‘괄시 많이 받는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이 회장의 얼굴에는 특유의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이 회장은 “외국 대사들은 만나자고 해도 잘 만나주지도 않는다”며 “문전박대도 많이 당했다”고 말했다. STX그룹이 해외에서 사업을 많이 하기 때문에 한국 주재 외국 대사를 만나는 것도 이 회장의 주요 업무 중 하나다. 이 회장은 “‘갑’ 하다가 ‘을’ 하려니까 울컥 울컥할 때가 많지만 속으로 삭인다”며 “그래도 STX가 해외에서 대규모 수주하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 ‘강덕수 회장은 얼굴 보기도 힘들어’

이 회장은 STX그룹이 대우건설 인수를 검토하다 무산된 일로 화제를 돌리자 “STX가 중동에 인맥이 많아서 수주를 많이 할 가능성이 높은데도 과거 공사 실적이 없어서 수주를 못할 때가 적지 않다”며 “대우건설을 인수하면 그런 문제가 해결돼 훨씬 수주를 많이 할 수 있는데 시장 반응이 안 좋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동국제강도 대우건설 인수 계획을 접었는데 대우건설 같은 기업이 저렇게 방치돼 있으면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겠느냐”며 “정부 고위 당국자를 만나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STX가 아프리카 사업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는 “우리가 가나에서 주택 20만 채를 짓는 사업을 수주했다고 하자 그런 나라에서 돈이나 제대로 받을 수 있느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우리나라 기업들이 그런 나라 아니면 어느 나라 가서 돈을 벌겠느냐”며 “남들 안 가는 곳에 가야 돈을 벌 수 있고, 그러려면 ‘컨트리 리스크’는 각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강덕수 STX그룹 회장과 호흡은 잘 맞느냐는 질문에 “얼굴 보기도 힘들다”며 “강 회장은 외근 영업하고 나는 안에서 손님 맞는 일을 한다”고 했다.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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